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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잠을 저축하세요! - 수면 저축 은행 -

요즘 현대인은 시간에 쫓기며 살아간다. 시간을 알차게 보내기 위해 계획을 세우면서 많은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현실이고, 몇 해 전 이와 같은 틈새시장을 노린 한 중소기업이 “시간 관리사”라는 것을 만들어서 대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고객들의 직업과 성별, 나이 등에 맞게 시간 계획을 해주고 스케줄을 미리 알려주는 일종의 비서와 같은 일이었다. 하지만 이것도 시간의 낭비를 효율적으로 막지는 못했다. 자신의 일을 남이 미리 계획하는 것 때문에 사생활 침해 논란이 일었고 자기 자신만큼 자신의 일을 효율적으로 아는 사람은 없다는 한계점을 극복하지 못해서였다. 이런 고민은 시간의 관리가 아닌 다른 방향으로 초점이 맞추어지게 된다. 그것은 바로 하루의 3분의 1정도를 무의미하게 소비하는 듯해 보이는 수면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것이 바로 『수면 저축 은행』이다.


2015년, 문명의 새로운 혁명이 일어났다. 매스컴이 떠들어대고 많은 사람이 환호성을 질렀던 이 사건은 바로 『수면 저축 은행』의 탄생이었다. 『수면 저축 은행』은 보통의 은행과 다름이 없는 은행 업무를 하였다. 예금을 받고, 대출을 하고, 이자를 주고, 수수료를 받는 등의 업무를 하는 일반 은행과 마찬가지의 업무를 하는 곳이 바로 『수면 저축 은행』이었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돈을 취급하는 일반 은행과 달리 새로 나온 이 은행은 바로 수면, 즉 인간의 잠을 취급한다는 것이었다.


『수면 저축 은행』의 탄생은 한 사람의 작은 욕심에서 시작되었다. 이 기발한 은행을 연 은행장은 한국의 30대 중반의 한 남자였다. 그가 밝힌 『수면 저축 은행』의 탄생 배경은 엉뚱하기까지 했다. 은행장의 인터뷰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그때가 바로 2004년이었습니다. 한국의 모든 곳에서 《아침형 인간》 열풍이 불었습니다. 일본인 사이쇼 히로시가 쓴 《인생을 두 배로 사는 아침형 인간》이라는 책이 인기를 끌면서 시작되었던 이 열풍은 때마침 불었던 ‘웰빙(Well-Being)’ 바람과 맞물려 2004년의 최고 히트 상품이 되기도 했죠. 그때 가난한 작가였던 저는 이와 같은 열풍을 보고 한 가지 생각을 했죠. ‘사이쇼 히로시는 그 책으로 얼마나 많은 돈을 벌었을까? 나는 어떻게 하면 저런 대박을 터뜨릴 수 있을까?’하고요. 그래서 결심을 했습니다. 남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일로 대박을 터뜨리기로요. 그래서 ‘일찍 일어나야’ 성공하는 아침형 인간을 뛰어 넘을 ‘일찍 일어나지 않아도’ 성공할 수 있는 새로운 성공 상을 만들어내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썼던 글이 바로 《수면 저축 은행》입니다. 이 글은 발표 당시 아무런 주목도 받지 못했습니다. 과학적 근거를 전혀 갖추지 못한 한 작가의 엉뚱한 발상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이때 저에게 손을 내밀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자신을 한 벤처 투자가라고 소개한 이 사람은 저와 함께 『수면 저축 은행』 프로젝트를 해나가자고 했죠. 그리고 지난 10여 년간의 연구 끝에 탄생한 것이 바로 이 은행입니다.”


은행장의 인터뷰 내용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한 사람의 엉뚱한 발상에서 시작된 프로젝트가 새로운 문명의 탄생이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획기적인 일이 될 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수면 저축 은행』이 무엇인지 알아보자.


인간은 하루의 3분의 1정도를 잠을 자면서 보낸다. 잠은 인간의 지친 몸의 원기를 회복시키고 정신을 맑게 하는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하지만 24시간인 하루 중 8시간을 잠을 잔다고 계산하면 365일인 1년 중 120여일을 잠을 자면서 보낸다는 것이다. 이를 인간의 평균 수명인 90년에 대입해보면 인간은 자신의 일생 중 30년 정도를 잠을 자는 것이다. 시험을 앞두고 밤샘 공부를 하며 잠을 쫓기 위해 노력했던 기억,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잠이 들어버린 일, 늦잠 때문에 학교와 직장에 늦어버린 일이 비일비재한 사람들은 잠에도 새로운 처방약이 있었으면 했다.


『수면 저축 은행』의 관리 방식은 간단했다. 잠을 자도 상관없는 시기에 잠을 자서 저축을 해놓고 잠을 자면 안 되는 중요한 시기에 저축해놓은 잠을 찾아다가 쓰는 것이다. 물론 저축해놓는 기간에 따라서 일종의 이자가 지급된다. 그리고 잠을 찾을 때는 정해진 수수료로 일정량의 잠을 받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보통 수면 저축〉이다. 그리고 일정량의 잠을 일정한 기간 동안 보관해놓는 〈정기 수면 예금〉, 일정량의 잠이나 일정 기간을 목표로 정해서 많은 양의 잠을 이자로 받는 〈정기 수면 적금〉등이 『수면 저축 은행』이 취급하는 수면 예금의 종류였다. 그리고 『수면 저축 은행』은 미리 잠을 자놓지 못한 고객을 위해서 잠을 대출해주기도 했다. 예를 들어 시험이 당장 내일로 닥친 사람이 24시간을 맨 정신으로 이용하고 싶으면 24시간짜리 잠을 대출 받는 것이다. 그리고 대출 받은 수면을 다 이용한 후 정해진 기간 내에 대출 받은 수면에 일종의 수수료로 정해진 양의 잠을 더한 수면을 갚아나가는 것이다. 하루를 몰아서 잠을 자서 갚을 수도 있고 일주일에 한 번 정도씩 몇 시간씩의 수면을 더 취해 갚아나가는 방법 등도 있다. 하지만 『수면 저축 은행』은 과다한 수면 대출을 막기 위해 최대 수면 대출의 양과 한 사람이 평생 대출할 수 있는 수면의 양을 정해놓았다. 수면을 대출 받아 방탕한 생활을 하거나 이를 악용하는 것을 방지하고, 정말 중요한 순간에 잠을 적절히 사용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렇다면 이런 수면의 저축과 대출은 어떻게 이루어질까? 여기에는 약간의 제한 조건이 가해진다. 그것은 바로 무미건조할 정도로 깨끗한 잠이다. 『수면 저축 은행』이 업무를 시작함과 동시에 선보인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헬멧과 같이 생긴 물건이었다. 이 물건을 설명하기 전에 먼저 인간의 수면에 관한 약간의 설명이 필요하다.


인간의 수면은 일정한 주기를 가지고 있다. 성인의 경우에 90분 정도의 수면주기 동안 여러 단계의 수면기를 거치면서 정상 수면 중 수면주기를 4내지 6회 정도를 반복하게 된다. 그리고 인간의 수면은 크게 논렘(nonREM) 수면과 렘(REM) 수면으로 나뉜다. 렘(REM) 수면은 Rapid Eye Movement를 의미하는 말로 급속안구운동을 나타내며 자율신경계가 항진되어 심박동, 혈압, 호흡의 변동이 심해지고 꿈을 꾸게 된다. 이 상태의 수면은 뇌에는 얕은 잠이지만 몸에는 가장 깊은 잠이다. 그리고 논렘(nonREM) 수면은 꿈을 꾸지 않는 수면이다. 꿈을 꾸더라도 거의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논렘(nonREM) 수면이다.


『수면 저축 은행』은 인간의 수면 중 꿈을 꾸지 않는 논렘(nonREM)수면만을 취급한다. 그 이유는 고객과 은행이 수면을 거래하는 도중에 생길지도 모를 착오나 생기지 않아야할 일 - 예를 들면 다른 사람의 수면을 주는 일이나 수면을 대출 받은 사람이 다른 사람의 꿈을 꾸는 일 등 - 을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꿈이 첨가되지 않은 순수한 수면만을 취급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앞에서 언급된 헬멧이 이용된다. 인간이 잠을 잘 때 뇌파가 발생한다. 그리고 잠을 자는 깊이에 따라서 다른 종류의 뇌파가 발생한다. 잠을 청하는 동안에는 점점 졸리면서 뇌파는 느려져 알파파가 나타나고, 깨어있을 때 주로 나타나는 베타파와 알파파가 사라지고 보다 촘촘한 세타파가 많이 나타난다. 그리고 잠이 깊어지면서 비교적 느리고 진폭이 큰 델타파가 나타난다. 이때 깊은 잠을 자는 것이다. 이 헬멧은 고객이 설정한 수면 저축이나 수면 대출의 양과 기간에 따라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뇌파를 발생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뇌파의 영향으로 인간의 잠의 양과 기간이 조절되는 원리이다.


이렇게 여러 가지 조건과 장비를 갖추고 시작한 『수면 저축 은행』은 시작과 동시에 많은 고객을 확보할 수 있었고 현재도 새로운 수면 저축 상품을 개발 중에 있다.


당신의 인생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잠!


당신은 어떻게 보낼 것인가?


지금 바로 가까운 『수면 저축 은행』으로 오라.


당신의 인생이 바뀔 수도 있다.



* 『수면 저축 은행』의 수면 예금 종류


1. 보통 수면 저축: 수면을 수시로 입․출할 수 있는 예금. 수면 이율이 낮음.


2. 정기 수면 예금: 일정 기간 동안 수면을 저축해 놓을 수 있는 예금. 3개월, 6개월, 1년 단위로 수면의 저축이 가능. 수면 이율이 높음.


3. 정기 수면 적금: 목표로 하는 수면의 양이나 목표 기간에 따라 수면 저축 가능. 한 달에 한 번씩 정해진 날짜에 수면을 저축하는 방법. 보통의 수면 이율.


4. 교육 저축 예금: 수험생들을 위한 예금. 유년기에 수면을 저축하여 수험 기간에 꺼내 쓰는 예금. 수면 이율은 낮으나 성적 향상에 따른 장학 수면 지급함.



* 『수면 저축 은행』의 수면 대출은 가까운 『수면 저축 은행』 지점에 문의하세요.


* 문의


홈페이지: http://www.sleepbank.com


대표 전화: 02) GO-SLEEP



《위의 내용은 (주)『수면 저축 은행』의 홍보 문구입니다.》

- 2004년 10월 2일 조약돌 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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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와의 인터뷰


운동복을 입고 문밖으로 나섰다. 새벽 공기는 쌀쌀했다. 나는 동네를 한 바퀴 돌기 시작했다. 꿈나라의 기운이 아직 가시지 않았는지, 대부분의 집은 불이 꺼진 상태였다.


“한 바퀴만 더 돌고 들어가야지.”


새해를 맞이하여 운동을 시작했지만, 이렇게 꾸준히 운동을 하게 될지는 몰랐다. 작심삼일이란 말은 나하고는 거리가 먼 것 같다. 왠지 모를 만족감을 느끼며 새벽 공기를 들이마셨다. 맑은 공기가 폐 속을 정화하는 듯 상쾌했다.


다시 천천히 뛰기 시작하던 나는 멀리 땅바닥에서 빛나는 작은 불꽃을 발견했다.


“담배꽁초 아냐?”


불이 붙은 듯한 기다란 담배 한 개비가 바닥에서 타들어가고 있었다. 그냥 지나치려다 담배에 붙은 불꽃을 끄기로 마음먹었다. 이대로 두고 가면 담배 연기가 맑은 공기를 더럽힐 것이다. 어쩌면 어딘가에 옮겨 붙어서 불이 날지도 모른다. 나는 담배꽁초를 밟기 위해 흰색 운동화를 신은 오른발을 높이 들었다.


“자, 잠깐만. 밟지 마.”


어디선가 들린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에는 정체 모를 힘이 숨어 있었을까? 내 오른발은 담배꽁초에서 빗나가 그 옆의 맨땅을 내딛었다. 나는 주위를 둘러봤다. 새벽의 정적만이 거리에 감돌고 있을 뿐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럼 내가 들은 목소리를 뭐람? 아직 잠이 덜 깬 것일까? 이제 남은 반 바퀴만 더 돌고 돌아가서 한 숨 자야지. 나는 다시 뛰기 시작했다.


“이봐, 여기라고. 그냥 가지마.”


등 뒤에서 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나는 곳을 발견한 나는 크게 놀랐다.


“다, 담배가 말을 한다.”


그랬다. 나에게 말을 건넨 것은 바로 타들어가고 있는 담배꽁초였다. 그렇게 그와의 대화는 시작되었다. 달밤에 체조를 하다가 도깨비불에 홀린 것처럼.


“뭘 그렇게 유심히 봐? 말하는 담배 처음 보는가? 보아하니 담배를 피우지 않나보군.”


담배에게는 담배를 피우는 사람과 피우지 않는 사람을 구별하는 능력이 있는 것일까? 내가 비흡연자라는 것을 어떻게 안 거지?


“음음, 그렇게 빤히 쳐다보니 내 소개를 하지. 나는 막 불이 붙었다가 버려진 담배라네. 사람들은 1미리 담배라 부르더군. 아무튼 반갑네.”


“이거 꿈이죠? 담배가 말을 하다니. 말도 안돼.”


“허허, 내가 방금 말하지 않았던가? 말하는 담배 처음 보냐고.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에게는 이미 알려진 사실인데. 우리 담배들은 훌륭한 대화와 상담의 상대라는 걸 말이지. 일단 날 좀 들어 올려주게. 날씨도 쌀쌀한데, 바닥에 누워 있으려니 몸이 떨리는구만.”


내가 바닥에 놓인 그를 곧바로 들어올렸다는 것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그 일이 진행되는 것이 정말 눈 깜빡할 사이였다는 것은 예상하지 못했을지라도.


“고맙군. 그렇게 손에 좀 들고 있어주게. 이제 곧 죽을 사람의 마지막 부탁이라 생각하고 말이야.”


그렇게 담배는 다시 말을 이었다.


“우리들이 몸을 불태우면서 하는 일이 뭔지 아는가?”


“그야, 뭐. 하얀 연기가 되어서 공기 중으로 흩어지는 거죠. 흰색 연기는 주변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주고, 그리고 담뱃재는 여기저기 날아다니며 거리를 더럽히고. 폐암도 일으키고.”


“그만, 그만.”


내 손에 들린 담배의 불꽃이 유난히 붉어지는 것 같더니 그가 소리를 질렀다. 나는 너무 정곡을 찌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머쓱해져서 입을 다물었다.


“그거야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조금만 주의를 하면 바뀔 일이고. 본질을 보라고. 우리는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수집한다네. 뜨거운 열기를 참으며 하얀 연기로 다시 태어나는 거지. 연기에 다양한 이야기를 싣고 하늘로 올라간다네. 그리고 그곳에 모인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지.”


“무슨 이야기를 모은다는 거예요?”


“담배는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과 대화를 한다고 몇 번이나 말해야 알아듣겠나? 아직도 이 상황이 꿈이라 생각하는 건가?”


“아, 아니에요.”


“그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계속 말을 하겠네. 우리에게 주어지는 시간은 길면 2~3분이야. 짧으면 30초도 주어지지 않지. 불이 붙어서 꺼지기 전에 이야기를 수집해야 해. 혼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의 한숨 섞인 푸념부터, 여럿이서 모여서 피우며 나누는 음담패설까지. 우린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모으지. 그리고 하늘에 올라가면 모아온 이야기를 풀어놓는 거지. 다양한 화젯거리가 있다네. 아픈 가족을 걱정하는 한숨 소리, 직장 상사에게 혼난 후의 넋두리,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후의 아픔, 친구에게 돈을 빌려주고 받지 못하는 답답함. 최근에는 여성 애연가들의 이야기도 인기를 얻고 있지. 물론 이야기를 들으며 단순히 노닥거리는 것은 아니야. 얼마나 좋은 이야기를 들려주느냐에 따라서 담배로 환생하는 순번이 빨라지니깐 말이지. 요즘은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줄어서 담배로 환생하는 것도 경쟁률이 치열해졌거든.”


“환생이라고요? 담배가 담배로 다시 환생해요?”


나는 뭔가 우스운 생각이 들어 그에게 되물었다.


“그래, 다시 태어나는 거지. 얼마 전에는 자살 직전에 피운 마지막 담배가 그 사람의 마음을 돌이키는 일을 했었지. 그 경험담을 들려준 담배는 공로를 인정받았고, 포상으로 그동안 간절히 원했던 시가(Cigar)로 태어날 수 있는 기회를 잡았지. 앞으로 1년간 말이야.” 


“그래요? 그럼 당신은 1미리 담배로 태어나기 전에 어떤 이야기를 했는데요?”


“하하, 그 이야기가 듣고 싶은 것이군. 그때 내가 했던 이야기는 재미없었다는 반응이었어. 만년 작가 지망생이 구상하던 소설 이야기였지. 그 친구가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생각을 할 때 난 그 이야기를 동료들에게 들려주면 최소한 순위권에는 들 거라 생각했어. 그런데 웬걸? 막상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았더니 듣고 있던 녀석들이 꾸벅꾸벅 졸기까지 하더라고. 그 친구가 작가 지망생으로만 남아 있는 이유를 그때서야 알게 되었지. 담배들도 감동시키지 못하는데, 어찌 눈이 높은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겠는가 말이지.”


웃고 떠드는 사이에 나는 담배와 나의 대화가 곧 끝이 날 것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 손에 들린 담배가 거의 다 타들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나도 하늘로 돌아갈 시간이 된 거 같군.”


“그런데 날 만나지 않았으면, 담배로서의 역할을 다 하지 못했겠죠? 한두 모금 빨다가 버린 장초였으니깐 말이죠.”


“이봐, 뭘 모르는군. 이렇게 장초로 남겨지는 것도 나름 매력이 있단 말이지. 맑은 공기를 빨아들이며 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고, 그렇게 인생을 마감할 수 있으니 말이지. 사실 이번에 난 은퇴를 할 생각이었거든.”


“은퇴라뇨?”


“담배로 다시 태어나는 걸 그만둘 생각이었지. 이번에 돌아가면 특별히 들려줄 이야기도 없으니 그야말로 잘 되었다고 생각하던 중이었거든. 그동안 너무 오랜 시간 담배로 살아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어. 젊은 친구들을 위해 양보해야할 때도 이미 지난 것 같고 말이야.”


내 손에 들린 그가 마지막 입김을 내뿜으려 하고 있었다. 나도 이제 그에게 작별 인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 작별 인사를 해야겠군. 운이 좋으면 다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이제 은퇴한다고 말했잖아요?”


“자네와 나눈 대화를 들려주면 은퇴시키지 않을 것 같은데? 나이가 들었다고 은퇴하라는 젊은 친구들을 설득할 수도 있을 것 같아.”


“얼마나 오래 사셨는데요?”


“자네 콜럼버스라고 들어봤는가? 알고 보니 그 사람 꽤 유명한 사람이더군. 나에게 처음으로 이야기를 들려줬던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라네. 아무튼 난 이만 가봐야겠네. 오늘 대화는 참으로 즐거웠네.”


“잘 가세요. 이 담배꽁초는 양지바른 쓰레기통에 고이 묻어드릴게요.”


“대화를 하면서 느낀 건데 자네는 예의도 바른데다가 남다른 유머 감각도 있는 것 같구만. 고맙네. 자네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담배를 피울지는 모르겠지만, 이거 하나만 기억하게. 담배와 대화를 나눈 사람은 많겠지만, 내가 아는 한 이 세상에서 담배랑 인터뷰를 한 사람은 자네가 처음이라네.”


그렇게 그와의 대화는 끝이 났다. 하늘로 올라가는 하얀 담배 연기를 바라본 후에 나는 담배꽁초를 든 채로 다시 뛰기 시작했다. 새벽 공기를 가르는 내 입김이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 2009년 7월 12일 조약돌 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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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7/14 10:13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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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0회 근로자문화예술제 작품현장 공모 안내문

( 최고상 대통령상 )

분야별 참가요강

문학
- 규격 : 3편(반드시 1인 3편) / 단편소설·콩트 : 200자 원고지 80매 내외(단편소설),                   
15매 내외(콩트) /
희곡 : 200자 원고지 80매 내외 / 수필 : 200자 원고지 15매 내외
- 소재나 주제는 제한이 없으며, 본인의 미발표 창작품이어야 함
- 1인당 2편까지 접수 가능
   (단, 시부문은 3편만 출품, 부문을 달리하면 2개부문까지 중복출품 가능)
 


 

자격 및 접수

참가자격
- 2009년 참가신청일 현재 사업장에 근무하는 근로자 및 산재로 요양중인 자                      
(단, 기성전문가 및 현직공무원은 제외)

제출서류
- 인터넷 접수시 제출서류는 없음

 - E-메일, 우편, 팩스 접수시 소정의 참가신청서 1부

참가비
- 없음

접수기간:
- 음악분야 : 2009. 2. 23 ~ 3. 20 / (근로자가요제)
- 문학분야 : 2009. 5. 1 ~ 7. 3
- 연극분야 : 2009. 5. 1 ~ 5. 29
- 미술분야 : 2009. 6. 1 ~ 7.24 (단, 방문접수는 7. 20 ~ 7.24까지)

접수방법
-
희망드림 근로복지넷(http://www.workdream.net)의 근로복지사업-근로자문화예술제-서비스신청

 - E-메일 접수 : art30@kbs-media.co.kr

 - FAX접수 : 02-781-8493 (KBS미디어)

 - 우편접수(마감일 소인 유효)

   : (121-270) 서울시 마포구 상암동 1652번지 KBS미디어센터 4층( 문화사업부)

접수처
- 음악, 문학, 연극분야 : 인터넷 및 E-메일, 팩스, 우편으로 KBS미디어 문화사업부에서 접수

 - 미술분야 : 직접접수(방문)는 KBS미디어, 근로복지공단 본부·지역본부·지사에서 접수

   ※ 공예부문 작품접수 및 반환은 KBS미디어(문화사업부)에서만 실시

  ◦ 접수처 문의사항

   ․  KBS미디어 문화사업팀 02)781-8171, 8172

   ․  근로복지공단 복지사업국 복지진흥팀 02)2670-0466, 0461

     ※ 근로복지공단 지역본부 및 지사 연락처 : www.kcomwel.or.kr (지사찾기) 참조

시상

시상인원 : 165명

시상금액 : 총 9,390만원

시상훈격 : 대통령상, 국무총리상, 노동부장관상, 문화관광부장관상 등

  ※ 각 분야 금상이상 수상자에게는 해외문화체험 기회 부여

   

공연 및 작품전시(행사)

근로자가요제
- 예선 : 2009. 3. 24 ~ 4. 3(서울, 원주, 대전, 부산, 대구, 광주, 제주)
- 본선 : 2008. 4. 23(목) 여의도 KBS홀

■ 근로자 문학제 : 수상작품집 발간 ~ 2009. 8. 31

■ 근로자미술제
- 중앙전시회 : 2009. 9. 18 ~ 9. 25(서울소재 전시관)

■ 근로자 연극제
- 경연대회 : 2009. 8. 21 ~ 9. 30(서울소재 공연장 및 해당지역 공연장)
- 앵콜공연(최고상 수상팀) : 2009. 10. 30 ~ 10 .31(서울소재 공연장)

심사 및 발표

기 준
근로자들의 경연장인 근로자 문화예술제는 어떤 소재나 주제라도 그 목적이 순수하고, 예술적인
감동을 줄 수 있는 작품이면 모두 심사 대상이 된다. 다만, 수상을 목적으로 타인의 작품을 모방
하거나 흉내내는 등의 불순한 작품은 그 기교가 화려하거나 고급이라도 선정하지 않는다.

결과발표
- 음악 : 2009. 4.23(본선당일 현장발표)
- 문학 : 2009. 8월초(인터넷 게시)
- 미술 : 2009. 8월말(인터넷 게시)
- 연극 : 2009. 10월중(인터넷 게시 및 개별통지)

참가 문의

홈페이지 안내

 - KBS미디어 : www.kbsmedia.co.kr (KBS미디어 / 제30회 근로자문화예술제 참고)

 - 근로복지공단 : www.workdream.net ( 희망드림 근로복지넷 / 공단복지사업 / 근로자문화예술제 참고)

담당 연락처 안내

 - KBS미디어 문화사업팀 :02)781-8171~2

 - 근로복지공단 복지진흥팀 02)2670-0466, 0461

 참가안내문 및 신청서 다운받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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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서른 두 살의 평범한 직장인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부모님과 그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아침 식사를 한다. 내가 출근을 하기위해 집을 나설 때면 두 살 터울의 여동생은 “오빠, 올해는 꼭 장가가야지?”라는 입에 밴 말을 하며 인사를 한다. 나는 여동생을 바라보며 한 번 살짝 웃어주고 손을 흔들어 주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차고로 가서 작년 내내 고생하며 할부금 납부를 끝낸 나의 애마인 흰색 승용차에 오른다. 시동을 켜면 들려오는 것은 “안녕하세요, 오늘도 좋은 아침입니다.”라는 멘트로 시작하는 라디오 방송이다. 나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최신 곡을 들으며 내 애마와 함께 살랑살랑 불어오는 봄바람을 가르며 달린다. 그렇게 20여분 운전하면 도착하는 곳은 작은 무역 회사 건물이다. 이곳이 올해로 4년째 다니게 된  나의 직장이다. 회사에 출근하면 항상 나보다 일찍 와 있는 미스 김은 “안녕하세요, 홍 대리님.”하며 인사를 건넨다. 그럼 나는 안녕하세요, 오늘도 좋은 아침입니다라고 웃으며 대꾸한다. 곧이어 출근할 신 과장은 “홍 대리, 오늘 무슨 좋은 일 있나봐?”라고 인사할 것이고, 남 부장은 “홍성루씨, 내가 좋은 맞선 자리 알아놨는데 생각 있으면 말하게나.”라 말하며 내 어깨를 툭툭 두드릴 것이다. 나의 하루는 그렇게 매일 같은 식으로 시작한다. 나는 오전에는 매일 반복되는 듯한 서류 정리 작업을 하며 보낸다. 가끔은 어제 정리했던 서류가 오늘 또 들어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점심시간에는 “어이구, 이 총각 참 마음에 든다니까. 내가 딸자식만 있었어도.”라고 말을 하며 밥 한 그릇을 더 건네주는 마음씨 좋은 아주머니의 식당에서 된장찌개와 함께 밥을 먹는다. 일보다는 춘곤증과 싸웠다고 하는 것이 더 나을 오후의 업무가 끝나고 퇴근 시간이 되면 입사 동기인 이 대리는 “성루야, 오늘도 그냥 가려고? 이런 날 한 잔 해야 하는 거야.”라며 손을 들어 소주잔을 꺾는 모습을 해 보인다. 그의 권유를 뿌리치고 다시 나의 애마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면 텔레비전 연속극을 보고 계시던 어머니께서 나를 맞아주신다. 어머니와 함께 텔레비전을 잠시 보다보면 ‘따르릉’하고 전화벨이 울린다. 친구와의 약속이 있어서 늦게 들어온다는 여동생의 전화다. 곧이어 울리는 전화벨 소리의 주인공은 거래처 사장의 접대가 있어서 새벽에나 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아버지다.


이렇게 반복되듯 지루한 나의 일상에서도 내가 웃음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나의 좌우명 때문일 것이다. 나의 좌우명은 “nowhere”다. 보통 사람들은 “노웨어“라고 읽는 이 영어 단어를 나는 “나우히어“라고 읽는다. “노웨어, 어디에도 없다“고 생각하는 비관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는 다르게 나는 “나우히어,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하는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이다. 내가 사는 곳이 바로 유토피아적 세계이다. 그리고 나의 좌우명은 내가 남들과 다른 삶을 살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게 한다. 4년제 대학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한 나를 돋보이게 하는 좌우명이라는 생각에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속으로, 때론 입 밖으로 이 단어를 되뇌며 뿌듯함을 느낀다. 그 외에 내 이야기를 해보자면 나는 특별한 취미활동을 가지지 않고 있다. 한 가지에 취미활동이라고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틈이 날 때마다 보는 영화 정도일 것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짐 캐리가 주연을 맡았던 ”트루먼 쇼“이다. 결혼한 아내가 있는 트루먼이라는 이름의 샐러리맨이 그동안 자신의 삶이 텔레비전을 통해 전 세계에 생중계되는 거짓 삶이었음을 깨닫고 그것을 극복한다는 것이 이 영화의 내용이다. 나는 이런 기발한 상상력을 가진 이 영화의 시나리오 작가를 존경하게 되었고, ‘내가 만약 트루먼과 같은 입장이었다면?’하고 생각하며 홀로 피식 웃어보기도 하였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나는 트루먼과 같은 거짓 삶이 아닌 반복되듯 지루하기는 하지만 진짜 삶을 살고 있음을 느끼고 어딘가에 있을 이름 모를 신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내 방은 내 또래의 보통 남자들의 방과 크게 다르지 않다. 방문을 열고 들어서면 왼편에 흰색 옷장이 있고, 옷장 안은 몇 벌의 정장과 정장의 색깔에 맞추어 골라 입을 형형색색의 와이셔츠와 넥타이로 가득 차 있다. 옷장 안 한 구석에는 가끔 회사에서 친목도모 수단의 일환으로 열리는 등반 대회에 참여하기 위한 등산복이 깨끗이 세탁되어 놓여져 있다. 이제 내 옷장 안에서 캐주얼 복장은 거의 찾을 수 없다. 캐주얼이라면 집 안에서 입을 정도의 가벼운 운동복 정도 밖에 없을 것이다. 옷장의 맞은편에는 침대가 놓여 있고 그 위에는 하늘색 침대 시트가 말쑥하게 덮여있다. 방문 맞은편에는 창문이 있다. 5월의 햇살을 따뜻하게 받아들여야할 창문은 지금 내가 내려놓은 회색 블라인드 때문에 방과의 소통이 막혀 있다. 나는 빛을 막는 대신 살짝 창문을 열어두어 봄바람이 방 안으로 조금씩 스며들게 해 놓았다. 방문의 오른편에는 작은 책상과 의자가 있고 책상 위에는 노트북 한 대가 놓여 있다.


나는 방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정장 상의를 벗어 침대 위로 던졌다. 주름 하나 없이 말끔히 덮여 있던 하늘색 침대 시트에 조금 주름이 졌지만 오늘 하루만큼은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나는 오른쪽 검지로 노트북 전원 버튼을 눌렀다. 컴퓨터가 부팅이 되는 동안 두 팔을 모아 깍지를 끼고 하늘 높이 쭉 뻗어 기지개를 한 번 폈다. 정겨운 윈도우 시작음과 함께 컴퓨터가 시작되자 어제 다운로드 받았던 최신 팝송을 윈앰프를 통해 재생시켰다. 그리고 침대에 누워 노트북에 연결된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노래를 따라 부르며 눈을 감고 사색에 잠겼다.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이 하얀 순결의 세상.


“전화 받으세요.”


휴대전화의 귀여운 아기 목소리 벨소리가 나를 다시 현실로 불러들였다.


여보세요.


“성루씨, 저에요.”


왠지 낯설게 느껴지는 나의 연인, 그녀의 목소리였다. 남자 나이 서른두 살. 보통 내 나이대의 남자들은 결혼을 전제로 하고 이성교제를 하고 있었지만 나와 그녀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서로를 사랑한다기보다는 조금은 필요에 의한 교제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우리는 필요한 때에만 만나는 연인 사이였다. 그녀는 내일 스승의 날에 즈음하여 그녀의 초등학교 은사님들을 모시는 동창회가 있으며 그 모임은 연인이나 부부를 동반하는 모임이라는 사실을 마치 회사에서 업무를 나에게 브리핑하듯 말을 한 후에 전화를 끊었다. 나는 내일 약속 시간에 늦지 않을게라는 말을 했지만 이미 전화는 끊어진 후였다. 가만히 손에 들린 휴대전화를 바라보던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책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노트북에 연결된 마우스를 손에 쥐고 윈도우 화면의 시작 버튼으로 마우스 커서를 옮겼다. 노트북을 끄려던 나는 내일 그녀와의 약속이 생각나서 시작 버튼 위의 마우스 커서를 윈앰프로 옮겨 흘러나오는 팝송을 반복 재생될 수 있도록 설정하였다. 내일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자리에서 긴장하지 않기 위해서 오늘 밤은 음악을 이불 삼아 편안하게 자기로 한 것이다. 샤워를 한 후에 잠옷으로 갈아입고는 전원 스위치를 내려 방의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다. 편안한 멜로디가 귓가를 스치고 나는 달콤한 잠에 빠져 들었다. 꿈속에서 내가 본 것은 모든 것이 하얀 순결의 세상.


아침에 눈을 뜨고 어제와 마찬가지로 나의 하루는 시작되었다. 오늘은 토요일이라서 그런지 평소와 조금은 다른 면도 있었다. 평소처럼 부모님과 대화를 나누며 아침 식사를 하였는데 오늘은 엉터리 일기 예보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 갔다. “오빠, 올해는 꼭 장가가야지?”라고 인사해야할 여동생은 아직 자고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여동생이 다니는 회사는 주 5일 근무제를 시행하고 있었고, 내가 4년째 다니고 있는 작은 무역회사는 그렇지 않다는 작은 차이가 나와 동생의 토요일 아침을 완전히 다르게 만들어 놓았다. 토요일이라서 한 시간 늦게 출근하는 탓에 나의 애마에 올라 시동을 켜면 들려야할 “안녕하세요, 오늘도 좋은 아침입니다.”라는 멘트로 시작하는 라디오 방송은 “오늘도 즐거운 하루되시길 바랍니다.”라는 마지막 멘트로 마무리가 되고 있었다. 회사에 도착하자 미스 김이 “홍 대리님, 오늘 데이트 있으신가 봐요?”라고 웃으며 반겨주었다. 오늘 여자 친구의 동창회를 생각해서 조금 신경을 써서 옷을 입었기 때문인지 신 과장과 남 부장의 인사말도 내 옷차림에 관련된 것이었다. 오늘은 아침 업무, 점심 식사, 오후 업무까지 어떻게 시간을 보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순식간에 지나가버렸다. 저녁의 약속에 계속 신경 썼기 때문인 것 같았다. 사실 그녀의 친구들을 만나는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고 그래서인지 어떤 실수를 하지 않을까하는 긴장감에 사로잡혀 하루를 보냈다. 퇴근 시간이 되자 이 대리가 “성루야, 오늘 모임도 잘 하고 와.”라고 말하며 오른손을 높이 들어 파이팅을 외친다. 나는 친구의 응원을 뒤로 한 채 약속 장소로 향했다.


“홍성루씨, 여기에요.”


나를 마중 나와 있던 것인지 그녀가 손을 들어 나를 불렀다. 그리고는 자연스럽게 나의 팔짱을 낀다. 그것이 전부이다. 우린 별다른 대화도 나누지 않고 동창회 모임의 분위기에 젖어 들고 있었다. 가끔 그녀의 친구들에게 나를 소개하고 명함을 주고받으면서 나누는 의례적인 대화가 오고 갈 때만 그녀가 나를 보며 웃을 뿐이었다. 우린 역시 필요에 의해 만나는 사이일 뿐이다. 동창회가 끝났고 여전히 내 팔짱을 낀 그녀는 친구들에게 손을 흔들며 작별 인사를 하였다. 나도 가끔 고개를 숙이는 정도의 가벼운 인사를 하였다.


우리도 이만 갈까요?


나의 말에 그녀가 즉각적으로 반응을 보였다. 그녀는 나에게 팔짱을 낀 손을 비 오는 날 빨래 걷듯 재빨리 빼내었다. 그리고는 집까지 데려다 준다는 나의 제의를 거절한 채 “홍성루씨, 오늘 감사했습니다.”라는 마지막 한  마디를 남기고는 택시를 잡아타고 사라졌다. 나는 그녀를 붙잡을 생각은 하지 않고 나의 애마를 타고 집으로 돌아갈 뿐이다. 집으로 돌아온 나를 반기는 것은 텔레비전 방송의 주말 연속극을 보고 계시는 어머니이다. 다녀왔습니다. 나는 인사를 하고 내 방으로 가서 방문을 연다. 깔끔하게 정리된 침대와 책상이 나를 반기는 방 안으로 들어가서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한다. 내일은 회사에서 야유회 가는 날이군. 피곤해서 가기 싫은데. 내 머릿속을 맴돌던 생각은 서서히 사라지고 눈앞이 서서히 하얗게 변한다. 온 세상이 눈이 내린 듯 하얗다.


일요일. 전화벨 소리에 잠에서 깼다. “홍 대리님, 비 때문에 오늘 야유회 취소되었어요.” 김연주씨 - 내가 항상 미스 김이라 부르는 - 의 목소리가 이렇게 반가운 적은 없었다. 회색 블라인드를 걷어 올리고 창 밖을 보니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내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달콤한 봄비였다. 무엇보다도 가기 싫었던 야유회가 취소되게 만들어준 고마운 봄비였다. 나는 회색 블라인드를 내려놓고 봄비가 가져다준 오랜만의 휴식에 내 몸을 맡긴 채 침대 위에 누워있었다. 가만히 누워있다 창가로 손을 뻗어 회색 블라인드를 다시 한 번 걷어 올렸다. 창문을 두드리는 봄비 소리가 정겹게 느껴졌다. 내가 살아 있음을 감사하게 느끼는 순간이었다. 나는 여기에 이렇게 살아있다. 나우히어. 


달콤한 휴식 후에 나를 찾아온 것은 달콤하지 않은 월요병이었다. 오랜만에 긴장감에서 벗어났던 내 몸의 근육들은 이완된 채 다시 수축하지 않으려하고 있었다. 나는 침대에 누운 채 방 안 가득 울리는 알람시계 소리를 무시하고 마치 시체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이대로 누워있고 싶었다. 하지만 영혼이 육체를 떠나버린, 이제는 누구의 곁으로 움직일 수도 없게 된 시체처럼 어디에도 없는 존재가 되는 것은 싫었다. 나는 다리에 힘을 주고 침대를 벗어났다. 아침 식사를 하며 부모님과 대화를 나누고, 여동생의 배웅을 받고, 똑같은 라디오 프로그램을 듣고, 같은 건물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같은 인사말을 나누며, 같은 업무에 같은 일상. 나의 무료한 하루는 그렇게 흘러갔다.


월화수목금토


내 삶의 놀라운 사건이 기다리고 있는 일요일을 향해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친구의 결혼식이 잡혀 있는 일요일을 향해.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목요일에는 친구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고 문상을 다녀왔었다. 일요일의 결혼식을 생각했었다면 가지 않는 것이었는데. 가족과 친지의 결혼식 전에는 문상을 다녀오지 말라는 금기를 기억했어야 했는데……. 사실 결혼식 이야기를 듣게 된 것은 문상을 다녀온 후인 금요일이었지만 말이다.


친구의 결혼식에 가기로 한 일요일 아침, 해가 떠올랐다. 오늘은 아침 일찍 일어나서 옥상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봄의 기운을 가득 담은 아침 공기를 들이마셨다. 오늘은 결혼식이 많이 잡히는 길일(吉日) 중의 길일이라는 말이 생각나니 몸 속 깊이 좋은 기운을 가득 받아들인 느낌이 들었다. 오늘은 아침밥을 혼자서 먹었다. 부모님은 새벽 일찍 동네 사람들과 부부 동반 야유회를 떠나셨다. 구김 하나 없이 잘 다려진 흰색 와이셔츠를 꺼내어 입고 하늘색 넥타이를 맸다. 이제 상의와 바지만 입으면 출발 준비는 끝이다. 검은색 정장을 입으려다가 지난 목요일 문상을 갈 때 입었던 일이 생각났다. 나는 대신에 화사한 하늘색 정장을 꺼내 입었다. 그리고 하늘색 넥타이를 풀고 분홍색 넥타이를 골랐다. 책상 서랍 안에서 흰색 봉투를 하나 꺼내 어제 은행에서 찾아온 빳빳한 새 지폐를 넣었다. 문상에 이어 결혼식이라니, 이번 달은 적자군. 한숨을 내 쉰 후에 집을 나섰다. 비록 내가 가진 돈은 줄어들지만 나의 마음은 넉넉해진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나의 애마와 함께 결혼식장으로 가는 길에 이삿짐센터 용달차를 많이 볼 수 있었다. 길일 중의 길일이라 이사를 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인가 보다. 결혼식장에 도착해서도 많은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결혼식장 입구의 안내용 게시판에 붙어 있는 종이에는 친구의 결혼식 이전과 이후에도 빽빽이 결혼식 일정이 적혀 있었다. 나는 친구의 이름을 발견한 후에 한 번 웃었다. 아직 결혼을 하지 못한 내 신세가 우스워서인지, 5월의 신부를 맞이할 친구가 부러워서인지 이유 모를 웃음이었다. 나는 로비에서 검은색 턱시도를 차려입은 친구를 발견하고는 반가운 마음에 달려갔다. 그리고 축하의 말을 전하며 손을 내밀었다.


“누구시죠?”


친구도 알아보지 못하다니. 녀석, 결혼한다고 긴장했구나. 결혼식 때문에 정신없는 친구의 입장이 이해가 되기는 했지만 조금은 섭섭한 마음도 들었다. 나는 악수를 하기 위해 내밀었던 손을 얼른 호주머니에 넣으며 웃었다.


“아, 홍성루씨죠? 미안해요, 정신이 없어서요. 오늘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친구는 미안해하며 손을 내밀었다. 나는 호주머니에서 손을 빼 친구와 악수를 하였다. 축하해. 행복하게 살아. 친구의 눈에서 눈물이 고이는 듯 했다.


결혼식은 예정되었던 11시 정각에 시작되었다. 검은색 정장을 입은 사회자가 마이크를 통해 결혼식이 시작되었음을 알렸다. 주례를 맡으신 분은 친구의 고등학교 은사님이라는 소개가 있었다. 나는 모르는 분이네. 어, 그러고 보니 친구와 나는 고등학교 동창 사이였던가? 중학교였나? 머릿속이 복잡했지만 정답은 생각나지 않았다. 그래,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아. 신랑 입장이라는 사회자의 말에 이어 유난히 턱시도가 잘 어울리는 친구가 들어왔다. 친구는 긴장한 듯 크게 숨을 들이마셨고 이를 본 하객 중 몇 명이 키득거리며 웃었다. 뒤이어 신부 입장이라는 사회자의 말과 함께 아버지의 손을 잡은 친구의 아내가 들어왔다. 신부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친구는 장인어른에게 큰 절을 한 후에 신부의 손을 잡았다. 주례 선생님의 주례사가 있었다.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행복하게 살라는 틀에 박힌 주례사였다. 주례사가 있는 동안에 졸고 있는 하객도 보였다. 주례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친구가 만세 삼창을 했고, 뒤이어 결혼 행진곡이 울리며 친구와 친구의 아내는 많은 사람들의 축복을 받으며 행진했다. 그리고 결혼식은 끝이 났다.


나는 축의금을 내면서 받았던 식권을 들고 결혼식장 지하에 있는 식당으로 향했다. 이제 밥을 먹고 집으로 돌아가서 일주일 중에서 오직 일요일에만 느낄 수 있는 평화로운 기분과 함께 휴식을 취할 것이다. 침대에 누워 지난주부터 듣기 시작한 팝송을 들으며 가만히 누워 있는 내 모습을 생각하자 저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오늘은 회색 블라인드를 걷어 올리고 창문도 활짝 열어 둬야지. 나는 갈비탕에 숟가락을 담그며 미소 지었다.


‘드르르륵’


바지 속의 휴대 전화기가 울렸다. 진동 모드로 바꾸어 놓았기 때문에 울렸다는 말보다 떨렸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홍성루씨죠? 아직 결혼식장에 계신가요?”


마침 결혼식장에 하객으로 왔던 사람이 나를 만나고 싶다고 했다. 나를 찾는 걸 보면 나를 잘 아는 사람이겠지. 오늘 결혼한 친구와 나의 단짝이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고등학교 동창 관계였던가? 그에게 물어봐야겠군. 그런데 내 전화번호는 어떻게 알았을까? 이런저런 생각이 머릿속을 두드려댔다. 


“안녕하세요, 저 기억하시죠?”


누구시죠?


나를 찾아온 남자는 자신을 역할 대행 업체의 사장이라고 소개한 후에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저도 이 결혼식에 왔다가 조금 전에 바로 옆 결혼식장에도 다녀왔습니다. 오늘이 길일이라서 결혼식이 많이 잡혔더라고요. 역할 대행을 나갈 회원이 부족하게 되서 저도 하객으로 올 수 밖에 없네요. 뭐, 이런 날만 있다면 먹고 살기는 좋겠지만요.”


…….


“먼저 감사하다는 말씀드릴게요. 홍성루씨가 나갔던 곳에서는 항상 고맙다는 전화가 오거든요. 역할 대행인이 아닌 진짜 가족이나 친지, 또는 친구 같았다는 말과 함께요. 지난 목요일에 찾아가신 상가에서는 부조금도 내셨다면서요? 알아보니 오늘도 축의금을 내셨다던데. 자, 이거 받으세요.”


그는 나에게 흰색 봉투를 건넸다.


왜 이러세요? 그건 친구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낸 돈입니다. 나는 그가 내민 봉투를 받지 않은 채 말했다.


“아, 착각을 하셨나보군요. 이건 이번 달 수고비입니다. 내일 은행 계좌로 입금하려고 하다가 마침 같은 곳에 오게 되어서 직접 드리려고 돈을 가져 왔습니다. 인사도 드릴 겸해서요. 홍성루씨는 우리 회사의 특별 회원이시니까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이번 달 수고비요?


“네, 이번 달은 세 건이나 하셨네요. 지난 주 토요일에 김현희씨의 동창회 모임에서 애인 역할 대행, 목요일에는 부친상을 당하신 손대석씨의 상가에서 조문객 역할 대행, 그리고 오늘은 이민수씨의 결혼식에서 하객 역할 대행을 하셨네요. 한 가지 제가 걱정스러운 점은 부조금으로 내신 돈을 제하면 실제로 홍성루씨의 수입이 얼마 되지 않을까하는 것입니다. 뭐, 그래도 부조금은 성루씨가 좋아서 내시는 거라니까 말리지는 않겠습니다. 식사 하시던 중에 죄송하네요. 그럼 마저 드세요, 전 가보겠습니다.”


그는 나에게 다시 한 번 악수를 청했다. 악수를 한 후에 그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뒤돌아서며 휴대 전화를 꺼내 들었다.


“서인현씨 되시죠? 아직 결혼식장에 계시죠?”


그의 목소리가 점점 멀어져간다. 그는 다른 특별 회원을 만나러 가는 듯 했다. 그리고 나는 그에게 하려던 질문을 차마 하지 못했다. 아니, 할 필요가 없었다. 오늘 결혼한 친구와 나는 고등학교 동창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우리는 친구가 아니다. 오늘 결혼한 이민수라는 사람은 역할 대행 업체에 의뢰한 고객이고 나는 그의 의뢰 조건에 맞는 역할 대행 업체의 대행인이었다. 무슨 일이든 맡게 되면 완벽하게 하려고 하는 내 성격 탓에 역할 대행 일도 정말 착실히 해왔던 것 같다. 내가 진짜라고 느끼고 몰입했을 만큼. 다른 사람들은 아르바이트 정도로 여기고 하는 일인데 말이다. 그동안 내가 살았던 삶은 진짜가 아닌 거짓 삶일까. 나는 트루먼의 삶을 거짓 삶이라 비웃어왔던 나의 오만함을 비웃듯 큰 소리로 웃으며 갈비탕 그릇에 담긴 숟가락을 다시 들었다. 식당 안에서 식사를 하던 하객들이 내 웃음소리를 듣고 나를 쳐다보았다. 실성한 사람을 대하는 듯한 그들의 시선. 하지만 그들의 눈치를 볼 필요는 없다. 그들과 나는 아무런 관계도 아니니까. 나는 더 큰 소리로 웃고 나서 갈비탕 그릇을 두 손으로 들어올렸다. 이미 식어버리긴 했지만 아직 약간의 온기가 남아있는 국물이라도 마셔서 허전해진 내 마음을 채워보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다 나는 갑자기 스친 생각에 깜짝 놀라며 손에 들고 있던 갈비탕 그릇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우리 부모님이 부모 역할 대행을 하고 계신 건 아니겠지?

아니, 반대로 내가 아들 역할 대행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내 여동생은? 내 직장은?

계약 기간이 길어서 아직 수고비를 주지 않는 것일까?


갈비탕 그릇 안에 있어야 할 갈비와 당면이 국물과 함께 식당 바닥 위를 굴러다닌다. 그리고 갈비탕은 이제 더 이상 갈비탕이라 불리지 못할 것이다.


내 곁에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이제는 그 어디에도 없다. 나우히어가 아닌 노웨어.
 

- 2005년 12월 13일 조약돌 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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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town 바로가기 경남신문 2009 신춘문예 공모

2009 경남신문 신춘문예 공모

단편소설·시·시조·수필·동화 5개 부문

경남신문사는 한국 문단의 새 주역이 될 참신하고 역량있는 신인작가 발굴을 위해 ‘2009 경남신문 신춘문예’ 작품을 공모합니다.
단편소설, 시, 시조, 수필, 동화 5개 부문에 걸쳐 작품을 모집하는 경남신문 신춘문예는 그동안 지역문학의 위상을 드높이면서 신인들의 등용문으로 굳건히 자리잡아 왔습니다. 한국 문단을 주도할 패기 넘치는 신인들의 작품을 기대합니다.


▲공모부문(당선작 고료·원고량)

*단편소설: 500만원(200자 원고지 80매 내외)

*시 : 200만원(1인당 3편 이상)

*시조 : 100만원(1인당 3편 이상)

*수필 : 100만원(200자 원고지 20매 내외)

*동화 : 100만원(200자 원고지 30매 내외)

▲접수마감: 2008년 12월 12일(금), 우편접수는 12일자 소인까지 유효

▲보낼 곳: 경상남도 창원시 신월동 100-5 경남신문사 문화체육부 신춘문예 담당자 앞(우편번호 641-701)

▲발표: 본지 신년호

▲참고사항

①응모작품은 미발표 순수창작품이어야 하며, 같은 작품을 다른 곳에 이중 투고했거나 표절작품일 경우 심사에서 제외됩니다. 당선 후 확인될 경우 무효 처리합니다.

②원고 겉표지를 따로 해 반드시 주소, 성명(필명일 때는 본명을 별도로 밝힐 것), 연락처를 기입해야 합니다. 겉봉에는 붉은색 필기구로 ‘신춘문예 응모작품’이라고 적고 응모부문도 기입하십시오.

③원고지와 A4 용지의 제출이 가능하며, 디스켓이나 이메일로는 접수받지 않습니다.

④각 부문 당선작은 1편으로 하며, 당선작이 없고 가작이 나올 경우 고료는 반액으로 합니다.

⑤당선작품은 본지 2009년 신년호부터 게재하며, 심사위원은 당선자 명단과 함께 발표합니다.

※문의 경남신문사 문화부 신춘문예 담당 ☏ 283-2211(내선 346)/ 055-283-5005


후원: 창원 고운치과병원 · 원광종합건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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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단의 신인등용문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대전일보 신춘문예는 소설가 윤대녕, 한창훈 혜범스님, 이정록, 최정심 시인 등 많은 중견 작가들을 배출하여 지역문단은 물론 한국 문학 발전에 빛난 업적을 쌓아가고 있습니다.
21세기 한국문학의 새지평을 열어갈 신인작가 여러분들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공모내용
▣ 단편소설(2백자 원고지 70매 내외) : 상패와 상금 2백만원
▣ 시(3편이상) : 상패와 상금 1백만원
▣ 동시(3편이상) : 상패와 상금 1백만원
▣ 동화(2백자 원고지 30매 내외) : 상패와 상금 1백만원 
 
 
응모요령
▣ 접수마감 : 2008년 12월 8일(월) 당일소인 유효
▣ 문의 및 접수처 : 대전일보사 문화사업국 신춘문예담당자 앞
              전화 (042)251-3801~4
▣ 당선작 발표 : 2009년도 본보 신년호
▣ 대일문학 11집발간 : 2009년도 대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과 대일문학 회원작품 수록예정

 
 
 
유의사항
*겉봉에 신춘문예 응모작품이라고 쓰고 응모부문을 필히 명기할 것
*원고 끝부분에 성명, 주소, 우편번호, 연락처, 필명일 때 본명을 명기할 것
*미발표된 신작에 한하고 표절 또는 이중 당선시 당선을 취소함
*원고 작성시 워드프로세서를 사용할 것
*인터넷으로는 안 됨 
 
 
주최 : 대전일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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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일보 2009년도 신춘문예

단편소설, 시, 시조, 동화 4개 부문…12월10일 공모 마감

본사는 한국문학에 새바람을 일으킬 신인작가 발굴을 위해 2009년도 신춘문예를 공모합니다. 새로운 감수성과 치열한 문학정신으로 한국문학의 새 지평을 열 예비문인들의 많은 응모를 바랍니다.

▲ 공모부문 및 당선작 원고료
- 단편소설 : 70장안밖 500만원
- 시 : 3편이상 300만원
- 시조 : 3편이상 300만원
- 동화 : 30장안밖 300만원
※ 200자 원고지 기준. 컴퓨터, 워드프로세서 원고는 반드시 A4용지로 출력


▲ 마감 : 2008년 12월 10일(당일 원고 도착분까지만 유효)

▲ 보낼 곳 : (우) 680-190 울산광역시 남구 무거동 299-10

경상일보 논설실 신춘문예 담당자

▲ 입상작 발표 : 2009년 1월 1일자 본보

▲ 유의사항

- 응모작품은 다른 신문·잡지 등에 발표되지 않은 순수창작물이어야 함.

- 같은 작품을 다른 신춘문예에 중복 투고하거나 표절 작품일 경우 심사에서 제외되며 입상 결정 후에도 당선 취소함.

- 원고 첫장과 맨 뒷장에 응모부문, 주소, 성명(필명일때는 본명 명기), 나 이, 연락처(일반전화, 휴대전화)를 반드시 명기할 것.

- 원고가 든 봉투에도 붉은 글씨로 '응모부문'과 함께 '신춘문예 응모작'이라고 명기할 것.

- 컴퓨터, 워드프로세서로 작성한 원고(단편소설, 동화)는 200자 원고지로 환산, 원고 첫 장에 매수를 기입할 것.

- 응모원고는 반환하지 않음.

▲ 문의 : 경상일보 논설실 신춘문예 담당자 052-224-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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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일보 2009년도 신춘문예 공모

미래 한국 문단의 주역을 찾습니다

강원일보는 창간 64주년을 맞아 한국 문단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갈 작가를 발굴하고자 2009년도 신춘문예 작품을 공모합니다.

오랜 전통과 권위를 자랑하는 강원일보 신춘문예는 강원도는 물론 한국 문단의 주역을 배출해 온 문학지망생들의 작가 등용문입니다.

모집부문은 단편소설을 비롯해 시(시조 포함), 동화, 동시 등 4개 부문이며 오는 12월12일까지 응모작품을 접수합니다.

한국문학의 미래를 열어갈 참신하고 패기에 찬 주역을 발굴하고자 마련한 강원일보 신춘문예 작품공모에 많은 참여 바랍니다.

■모집부문

△단편소설=200자 원고지 80매 내외(상패·상금 300만원)

△시(시조 포함)=1인 5편 이상(상패·상금 200만원)

△동시=1인 5편 이상(상패·상금 200만원)

△동화=200자 원고지 30매 내외(상패·상금 200만원)

■접수마감:12월12일(금)

※우편발송 원고도 12월12일 도착분까지만 유효.

※응모된 작품은 반환하지 않습니다.

■보 낼 곳:강원도 춘천시 중앙로 31(우편번호 200-705)

강원일보사 편집국 문화체육부 신춘문예담당자 앞

■발 표:2009년 1월1일자 본보 지상

■문 의:강원일보사 편집국 문화체육부

(033)258-1381∼2

■기타

△응모작은 다른 신문 잡지 등에 발표되지 않은 순수창작품이어야 합니다.

△동일한 원고를 다른 신춘문예에 중복 투고한 경우 무효 처리됩니다.

△컴퓨터, 워드프로세서로 작성할 경우 A4 용지 크기에 맞추고 200자 원고지를 기준으로 계산한 원고분량과 응모부문 작품편수 등을 작품 표지에 기재해 주시기 바랍니다.

△디스켓이나 팩스로 응모한 작품은 접수하지 않습니다.

△작품 앞·뒷면에 주소 성명(필명일 경우 본명 별도 기재) 전화번호 등을 적고 겉봉투에 ‘신춘문예 응모작’이라고 붉은색 글씨로 표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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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일보 2009 신춘문예

경인일보사가 한국문학의 미래를 밝게 비춰나갈 창의적이고 재기발랄한 신인 작가 발굴을 위해 '2009년 경인일보 신춘문예' 작품을 공모합니다.

경인일보 신춘문예는 지난 1987년부터 시작된 경기·인천 지역일간지 중 유일한 문인 등용문으로 해마다 공정하고 권위있는 심사를 통해 배출된 문인들이 활발한 활동으로 우리 문학계의 든든한 밑거름이 되고 있습니다.

2009년 신춘문예 역시 재치있고 힘있는 문학도들의 참신한 문학작품으로 한국 문단의 명성을 높여갈 것입니다.

경인일보와 함께 한국 문학의 미래에 한 획을 그어나갈 역량있는 문학도들의 많은 관심과 응모 바랍니다.

■ 응모마감:2008년 12월10일(당일 소인 유효)

■ 응모부문:단편소설(200자 원고지 80~100매), 시(3편 이상)

■ 시상 및 상금:단편소설은 상패 및 원고료 500만원, 시는 상패 및 원고료 300만원

단, 당선자 없는 가작의 경우는 원고료의 반액을 수여

■ 당선작 및 심사위원 발표:2009년 1월2일자 경인일보

■ 응모 및 문의:(442-702) 수원시 팔달구 인계동 1122의11

경인일보 문화체육부 신춘문예 담당자 (031)231-5380, 5384

※원고 하단에 이름(필명인 경우 본명도 함께 기재), 생년월일, 주소, 전화번호를 반드시 적어주시기 바랍니다. 접수한 원고는 반환하지 않습니다. 타사 신춘문예에 중복투고한 원고나 기성작가의 응모, 표절작품의 경우에는 당선이 취소됩니다. 인터넷 및 전자메일을 통한 접수는 받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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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두운 방안에 침묵이 흘렀다. 고요함을 참지 못하는 듯한 어색한 기침 소리가 한 번 뱉어져 나왔지만 어둠 속이었기에 약한 인내심의 소유자가 누구인지는 아무도 몰랐다. 물론 기침 소리의 당사자를 제외한다면.


“지금 들어온대, 모두 준비해.”


귀에 꽂힌 무전기를 통해 전해진 정보를 모두에게 알리던 선호가 성냥을 그었다. 어둠을 쫓아낸 성냥의 불씨는 이내 케이크에 꽂힌 하나의 초에 옮겨졌다. 주어진 임무를 끝낸 성냥불을 입으로 불어 끄는 선호의 얼굴에 비장감이 흐르는 듯 보였다. 케이크를 중심으로 둘러앉은 사람은 선호를 포함해서 다섯 명이었고 모두가 조용히 케이크와 닫힌 문을 번갈아가며 보고 있었다. 그때 문이 열리며 촛불이 부끄러워할 정도의 밝은 빛과 함께 한 소녀가 나타났다. 작은 키에 긴 생머리의 소녀는 앳된 모습이었다.


“어머.”


소녀는 놀란 듯 그 자리에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소녀의 눈동자가 초가 녹아들어가는 케이크에 고정되려던 찰나 선호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여진아, 초 다 녹겠다. 어서 들어와.”


선호의 말과 동시에 여진이라 불린 소녀의 뒤에서 한 청년이 여진의 등을 떠밀며 문을 닫았다. 손에 무전기가 들린 것으로 보아 이전에 선호에게 무전을 날린 주인공인 듯 했다. 여진과 무전기 청년이 방에 들어서자 문이 닫혔고, 빛이 사라진 방안에서 촛불은 다시 의기양양한 모습을 되찾고 있었다.


“자, 하나, 둘, 셋.”


선호의 신호와 동시에 조용했던 방안이 노랫소리로 가득 찼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여진이의 생일 축하합니다.”


노래가 끝나고 박수가 끝날 때까지 여진은 멍한 표정으로 케이크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가장 밝은 표정으로 기쁨을 표현하던 수현이 여진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뭐해, 초 다 녹겠다. 입으로 ‘후’하고 촛불을 끄면서 소원을 빌면 돼.”


여진은 수현의 말에 정신을 차렸는지 이내 입으로 촛불을 불었다. 다시 찾아온 어둠 속에서 선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도 이게 정확히 맞는지는 모르겠다. 이 노래의 박자가 맞는지, 음정이 맞는지. 원래 케이크에는 그 사람의 나이만큼 초를 꽂았대. 그리고 촛불을 끄면서 소원을 빌고. 소원은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아야 이루어진다더라. 이게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전부야.”


선호의 말이 끝나고 창문을 가렸던 커튼이 걷히자 방을 가득 채웠던 어둠이 쫓겨났다. 가만히 케이크만을 바라보던 여진이 이내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방안을 채우던 침묵이 잠시 자신의 자리를 울음소리에 내주고 있었다.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소맷자락으로 훔치며 수현이 말했다.


“여진아, 무사히 다녀와야 해. 알겠지? 가장 어린 널 사지로 몰아넣는 것 같아서 마음이 무거워. 흑흑흑.”


이내 울먹이는 수현을 여진이 감싸 안으며 대답했다.


“아니야. 내가 자원한 일인데. 선호 오빠, 원래 생일을 맞은 사람의 나이만큼 초를 꽂았다고 했잖아. 근데 오늘 초를 하나 꽂은 건 내가 오늘 새로 태어났다는 의미 맞지?”


“그래, 맞아. 요 녀석, 어리게만 봤더니 오라버니의 깊은 뜻까지 헤아릴 줄 아는구먼. 허허.”


선호의 웃음소리와 함께 모두가 눈물을 닦으며 웃고 있었다. 울음소리에 자리를 내주었던 침묵은 여진의 웃음소리와 환한 미소를 보며 자신의 자리를 영원히 찾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게 방안을 가득 채운 웃음소리와 함께 100년만의 생일 축하 자리는 계속되었다. 울다가 웃으면 어떻게 된다는 100년 전의 이야기를 그들은 알지 못했다.



2.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그러니까 서기 2057년 1월 1일의 일이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해가 빨리 뜬다는 이름에 걸맞게 울산의 간절곶은 새해를 맞이하여 해돋이를 보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추운 겨울 날씨에 저항하기 위해 두꺼운 옷과 장갑, 목도리로 중무장을 했지만 겨울 바다 바람은 살을 에는 듯 차가웠다. 새해의 첫 태양이 뜨는 장관을 기대하며 추위를 견디던 사람들은 그들의 기대에 부응할만한 평생 잊지 못할 장관을 보게 되었다. 수평선상에 모든 것을 집어 삼킬 듯한 해가 뜨는 광경이 연출되자 간절곶에 직접 나와 있는 사람들과 텔레비전 중계를 통해 이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동시에 탄성을 질렀다. 그리고 떠오른 태양과 함께 눈앞을 가득 채운 장면에 그들의 탄성은 이내 괴성이 되었다. 태양의 주변에서 어른거리는 검은 점들을 사람들은 처음에는 태양의 흑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검은 점은 점점 커지며 사람들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사람들의 시야에 확연하게 모습을 드러낸 그것은 태양의 흑점이 아닌 우주선이었다. 우주선은 간절곶에 모인 사람들을 공격했다. 우주선에서 쏘는 레이저 광선 빔은 순식간에 사람들의 형체를 알아 볼 수 없게 만들었다. 간절곶을 가득 채운 사람들을 쓰레기더미 태우듯 태워버리고 간절곶이라는 지역을 지도에서 지워버린 우주선의 무자비한 공격 장면은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실시간으로 전해졌고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다. 영화 속에서만 보아왔던 화성 침공의 시작이었다. 전 세계는 경악했고, 주가는 폭락하고 유가는 치솟았다. 사람들은 벌벌 떨며 문을 걸어 잠그고 외출을 하지 않았다. 그래도 그들의 공포는 사라지지 않았다. 마치 공포 영화의 주인공이 귀신을 피해 이불을 뒤집어쓰고 벌벌 떠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영화에서 보아온 화성인과 우주선의 공격에 맞설 초인 영웅을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고 전 세계의 모든 전파가 하나씩 멈추기 시작했다. 화성인의 소행으로 생각되는 일이었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바깥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모두가 집 안에 숨어 죽은 듯이 지냈다. 밤이 되어도 혹시나 빛을 보고 화성인이 쳐들어올까 두려워하여 전등은커녕 촛불 하나 켜지 못했다. 그렇게 암흑 같은 시간은 흘러갔다.


그로부터 석 달의 시간이 흘렀다. 정지되었던 세계의 모든 전파가 하나씩 돌아오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라디오, 텔레비전, 인터넷을 통해 가슴을 쓸어내릴만한 소식을 들었다. 아시아를 공격한 것을 시작으로 유럽과 아프리카 대륙을 공격했던 화성인의 우주선 함대가 지구 방위군에 의해 무력화되었다는 것이다. 참으로 영화 같은 이야기였다. 지구 방위군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그랬고, 지구 방위군이 화성인을 물리친 방법 또한 영화 같았다. 화성인의 무자비한 공격에 고전을 면치 못하던 지구 방위군이 화성인을 물리친 방법은 60여 년 전 팀 버튼이 만든 영화 <화성 침공>에서 화성인을 물리칠 때 사용한, 올드 팝송의 선율과 파장을 이용하여 화성인의 몸을 터뜨리는 것이었다. 방법이야 어찌 되었건 이제는 살았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환호했고, 영화 <화성 침공>을 통해 미래의 후손들이 살아남을 방법을 알려준 팀 버튼은 영웅으로 추앙되었다. 대한민국의 간절곶이 있었던 곳을 시작으로 전 세계 곳곳에 팀 버튼의 동상이 세워졌다. 그리고 전 세계에 다시 한 번 평화가 찾아왔다.



3.


화성인의 우주선 공격에 대한 공포가 어느 정도 사라져가고 있던 2060년, 대한민국에 새로운 정치 패러다임이 생겨났다. 일명 태양당(太陽黨, The Solar Party)과 태음당(太陰黨, The Lunar Party)이라는 두 정당이 정치 세력의 양대 산맥으로 떠오른 것이다. 이것은 비단 대한민국만의 정치 패러다임이 아니었다. 정당의 이름만 조금씩 다를 뿐 전 세계의 정치를 이끄는 세력은 대한민국과 대동소이했다. 전 세계적으로 통합되어가는 듯한 정치 세력의 출현은 진일보한 정치의 발전이라는 평도 있었지만, 두 정당이 내세운 정치 이념은 원시 부족 사회의 그것과 비슷했다. 태양을 숭배하는 태양당은 생일을 양력으로 기념하는 이들을 주축 세력으로 삼고 있었고, 이와 반대로 달을 숭배하는 태음당은 생일을 음력으로 기념하는 이들이 주축 세력이었다. 과거부터 양력과 음력의 개념이 잘 잡혀 있는 대한민국과 아시아 국가들은 그 개념을 그대로 사용하였고, 다른 대륙의 국가들은 자신들만의 양력과 음력 개념을 설정하여 적용시켰다. 예를 들면 해가 떠 있을 때 태어난 사람의 생일을 양력으로, 해가 진 이후에 태어난 사람의 생일을 음력으로 규정한 프랑스나 봄과 여름에 태어난 사람의 생일을 양력으로, 가을과 겨울에 태어난 사람의 생일을 음력으로 규정한 호주의 경우가 대표적이었다.


태양당과 태음당으로 나누어진 정치 세력은 전대미문의 우스운 정책을 내놓는데 합의했다. 그것은 바로 생일과 관련된 모든 행위의 금지를 규정한 ‘생일 규제 법안’이었다. 이 법안에 따르면 생일과 관련된 모든 언어와 행동을 정치적 행동으로 규정하였다. 물론 이를 어길 시에는 정치 사범 내지는 사상범으로 몰려 강력한 처벌이 뒤따라오도록 되어 있었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이 언제에요?”, “생일이 양력인가요? 음력인가요?” 등의 말을 포함하여 생일 축하 노래, 생일 파티, 생일 케이크 등이 대표적인 규제 대상의 예였다. ‘생일 규제 법안’을 우습게 여기고 그동안의 관습대로 생일 파티를 열었던 사람들이 줄줄이 구속되어 처벌받는 모습이 텔레비전 뉴스를 통해 보도되자 많은 사람들이 ‘생일 규제 법안’에 대한 반대 운동을 벌였다. 경찰에 의해 연행된 반대 운동의 주도 세력이 무기 징역을 선고받고, 반대 운동 집회에 참여했던 사람들에게 실형이 선고되었다. 사람들은 지구상의 민주주의가 사라졌다는 말과 함께 차라리 화성인의 지배를 받는 편이 나을 것이라는 말마저 내뱉게 되었다. 하지만 ‘생일 규제 법안’을 제외하고는 태양당과 태음당은 그동안 정당들이 보여주지 못했던 모범적이며 생산적인 정치를 해보였고 세계의 정국은 안정화되었다. 그리고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를 생일 축하 풍습은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4.


이른 아침 출근 시간대,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가운데 한 소녀가 서 있다. 회색의 빌딩 숲 속에서 아무런 대화 없이 자신만의 일상을 쫓기에 바쁜 사람들에게 소녀의 존재는 무의미했다. 펑펑 울다가 온 것인지 두 눈이 퉁퉁 부은 소녀는 바닥에 놓인 상자에서 조심스레 케이크를 꺼냈다. 그리고 가방에서 작은 초를 꺼내어 케이크에 꽂았다. 소녀가 꽂은 초는 정확히 100개였다. 소녀가 100개의 초를 하나씩 케이크에 꽂는 동안에도 사람들은 소녀를 거들떠보지 않았다. 소녀는 라이터를 꺼내어 100개의 초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케이크를 두 손에 들어 가슴 높이까지 끌어 올린 후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여진이의 생일 축하합니다.”


지나가던 사람 중 몇몇이 걸음을 멈추고 신기한 광경을 쳐다보았다. 여진은 조금 더 큰 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조금은 서툴지만 선호와 수현 등이 불러주었던 그 노래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자 여진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여진이의 생일 축하합니다.”


여진의 노래가 계속되면서 이를 신기하게 여긴 사람들의 시선이 하나 둘 여진에게 고정되었다. 여진은 용기를 얻은 듯 더욱 큰 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100년 만에 다시 세상에 나온 생일 축하 노래는 사람들의 귀를 자극했고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멀리 숨어서 여진을 지켜보던 선호 일행도 작은 목소리로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며 여진을 응원했다. 이들의 노래는 어린 여진을 사지로 보내고 자신들은 숨어있는 상황에 대한 미안함의 표현임과 동시에 자기 위안이기도 하였다. 여진의 노래는 케이크에 꽂힌 100개의 초가 완전히 녹아 사라질 때까지 계속되었다. 여진의 주변을 빙 둘러싼 사람들은 누군가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의해 강제 해산되었고 여진은 그 자리에서 체포되었다. 여진의 생일 축하 시위는 그렇게 끝이 났다.



5.


정치 사범으로 분류되어 재판을 받고 있는 여진에 대한 처리는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여진의 생일 축하 시위 장면이 그 당시 주변에서 구경하던 한 사람의 휴대 전화에 녹화된 것을 시작으로 전 세계로 뻗어나갔다. 휴대 전화 등의 소형 휴대 기기를 이용한 무선 인프라가 정보 공유의 주요 수단으로 여겨질 만큼 무선 인프라가 잘 구축된 현재에 여진의 생일 축하 시위 장면이 전 세계로 퍼지는 것은 채 1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이것이 선호와 수현을 중심으로 기획되고 여진이 실천에 옮긴 생일 축하 시위가 노리는 효과이기도 했다. 새로우면서도 더 자극적인 것을 찾는 현대인들에게 100년 동안 통제되어온 생일 축하 노래와 생일 케이크는 커다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여진의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중앙 보안국의 한순열은 최근 며칠 사이에 부쩍 주름살이 늘어난 것이 아닌가하는 착각을 하고 있었다. 30대에 국가 정보기관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중앙 보안국의 국장이 된 능력을 가진 한순열이 그동안 맡아서 처리해온 일에 비하자면 여진을 처리하는 일은 쉬우면서도 동시에 어려운 일이었다. 여진이라는 개인을 처리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다. ‘생일 축하를 금지한 생일 규제 법안을 위반하였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선동하여 정부를 전복시키려 시도했다.’는 죄목으로 사형을 받도록 유도하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여진의 생일 축하 시위 장면을 본 사람 수가 세계 인구 150억 명 중 10분의 1인 15억 명은 넘을 거라는 중앙 보안국의 통계가 그의 고민을 말해주고 있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한순열이 내놓은 여진의 처리 방안은 놀라울 정도가 아니라 섬뜩하기까지 했다.


“오늘 ‘생일 규제 법안’을 위반한 이여진에 대한 대법원의 최종 판결이 나왔습니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피고 이여진은 지난 100년 간 화성인의 풍습이라는 이유로 금지되었던 행위를 많은 사람들 앞에서 해보였다. 그리고 정확한 판단력을 가지지 못한 대중을 선동할 우려가 있어 사형을 처한다. 사형 집행은 판결이 내려진 후 10일 이내에 우주로 추방하는 것으로 정한다.’며 이여진의 사형을 선고하였습니다.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사건은 이로써 마무리를 짓게 되었습니다. 대법원에서 KVS 뉴스 신동우입니다.”


이여진에 대한 대법원의 최종 판결에 쏠렸던 사람들의 관심은 이제 우주로 추방될 한 소녀의 운명으로 옮아갔다. 판결이 내려진 후 10일 이내에 집행될 우주 추방의 정확한 날짜와 그 방법에 대한 추측이 난무했다. 우주 왕복선을 이용하여 지구와 인접한 다른 행성의 수용소에 보내질 것이라는 추측이 가장 설득력을 얻었는데, 수용소로 보내는 것은 사형 집행이 아니라는 반론이 나오자 그 설득력은 점점 힘을 잃고 있었다. 그 다음으로 나온 추측이 여진을 캡슐에 넣어 우주로 날려버린다는 내용이었는데, 캡슐을 이용한 추방 방법이 우주 왕복선을 이용하는 방법보다 좀 더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을 때 사람들을 충격에 떨게 만든 조사 결과가 발표되었다.


“금지된 화성인의 풍습을 재현한 이여진에 대한 사형 선고가 내린 가운데 국립 과학 수사 연구소의 우주 생물학과에서 놀라온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체포 당시 채취된 이여진의 혈액을 정밀 분석한 결과, 지구인의 혈액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성분이 발견되었습니다. 이 성분은 100년 전에 지구를 침범하였던 화성인의 혈액 성분과 일치하는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국립 과학 수사 연구소의 조사 결과 발표가 이어지자 정부는 화성인 이여진의 사형 집행을 서둘러 실시한다고 발표하였습니다. 국립 과학 수사 연구소에서 KVS 뉴스 신동우입니다.”


텔레비전 화면을 보던 여진은 가만히 한순열을 바라보았다.


“날 화성인으로 둔갑시켰군요.”


“그게 가장 간단하거든. 너희들의 똑똑한 계획에 따라 전 세계로 퍼져나간 생일 축하 장면에 대한 사람들의 호기심을 공포심으로 바꿀 수 있단 말이야. 사람들은 아직도 100년 전 지구를 침공한 화성인에 대해 무의식중에 공포심을 지니고 있거든. 놀라울 정도로 발달한 우주 과학 기술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숙원이었던 우주 관광 사업이 시작되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그 거부감 때문이니까. 하하.”


“너희라니 무슨 말이죠?”


비열한 웃음을 짓는 한순열에게 경멸에 찬 시선을 보내던 여진은 갑자기 머리를 스친 생각에 놀라며 입을 다물었다.


“…….”


“내 말에 눈치를 챘나보군. 그래, 내가 네가 아닌 너희라고 했지. 이미 너희 조직에 대한 정보 입수는 물론 신상 파악까지 끝난 상태지. 이선호, 한수현, 그리고 졸개들. 네가 사랑하는 언니, 오빠들도 조만간 널 따라 갈 테니 걱정 말라고.”


여진은 고개를 떨어뜨리고, 체포된 이후 힘든 상황에서도 줄곧 참아왔던 눈물을 흘렸다.



6.


“100년간 금지되었던 풍습으로 지구인을 포섭하여 지구를 또 다시 위험에 빠뜨리고자 했던 화성인의 최후가 결정되는 날입니다. 이곳 전남 고흥 나로도 우주센터에는 화성인 이여진을 화성으로 돌려보낼 우주 왕복선이 발사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사형이 선고된 화성인을 화성으로 돌려보내는 것으로 지구인들은 100년 전 화성인의 만행을 폭력이 아닌 평화적이고 인도적인 방법으로 되돌려주는 성숙된 모습을 보여주게 되었습니다. 나로도 우주센터에서 KVS 뉴스 신동우입니다.”


여진은 완전무장을 한 특수 부대원들의 감시 하에 우주 왕복선 안으로 호송되었다. 특수 부대원들은 자신들의 신분을 숨기기 위해 검은 복면을 쓰고 있었다. 그들은 검은 복면과는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 검은색 선글라스도 끼고 있었는데 이는 화성인과 눈을 맞추었을 때 일어날지 모를 최면과 같은 불상사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었다. 여진은 특수 부대원들의 손에 들린 소총의 위압감보다는 지구에서 추방된다는 사실이 가져다준 공포에 몸을 떨었다.


“괜찮아,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너는 새로운 곳에서 살 수 있을 거니까. 그래도 교수대에 목이 대롱대롱 걸려 죽는 것보다는 이게 낫다고 생각하지 않나?”


여진의 호송 업무를 책임지고 우주 왕복선에 오른 한순열이 의자에 묶인 채로 앉아 떨고 있는 그녀를 보고 조롱하듯 말했다. 여진은 그의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발사 준비를 마친 우주 왕복선은 서서히 지구를 떠나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지구의 중력 범위에서 벗어났다.


“잘 보아라, 이젠 지구에 돌아올 일이 없을 테니…….”


지구의 대기권을 벗어나고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에 한순열이 여진의 몸에 묶인 특수 밧줄을 풀어주며 우주 왕복선의 창을 가리켰다. 여진은 그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으로 몸을 움직여 창밖을 바라보았다. 우주 왕복선 밖으로 하나의 행성이 보였다. 점점 멀어지는 하나의 행성. 그것은 푸른빛의 지구가 아닌 붉은빛의 지구였다. 여진은 놀라서 당황한 표정으로 한순열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럴 수가. 지구는 원래 푸른빛 아닌가요? 창 밖에 보이는 행성은 붉은빛인데…….”


“…….”


한순열은 대답 대신 여진에게 책 한 권을 건넸다. 조금은 지저분한 느낌이 드는 검은 표지의 두꺼운 책이었다. 여진은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든 사실에 대한 대답이 책 속에 있을 거라 확신하며 책을 들고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조심스레 책장을 넘겼다.



7.


<묵시록>


지구력 2057년 1월 1일, 한 무리의 지구인을 공격한 것을 시작으로 지구를 식민지 행성으로 만들기 위한 절차가 시작되었다. 우리의 예상대로 지구인의 무력 저항은 격렬했으나 우리의 첨단 과학 기술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이었다. 저항하는 지구인은 차례차례 사살했고, 저항 의지를 가지지 않는 지구인은 살려두었다. 그들의 생식력을 통해 멸종해가는 화성인을 되살리고, 그들의 노동력을 통해 식민지 지구 건설과 화성의 재건을 이루어야하기에 그들은 소중한 자원으로 분류하여 관리하기로 하였다.


지구력 2057년 2월 9일, 일주일 전 마지막 무력 저항을 끝으로 지구인의 공격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소중한 자원으로 분류된 지구인을 찾아내는 작업에 착수했다. 곳곳에 숨어 있던 많은 지구인을 포획하였다.


지구력 2057년 2월 14일, 갑자기 들려온 폭발음의 정체는 핵폭발로 밝혀졌다. 지하에 숨어 있던 지구 방위군의 최후 세력이 핵을 터뜨린 것으로 보인다. 지구 최후의 무기라는 핵은 지구의 생태계를 오염시켰다. 이에 우리는 지구를 떠나 화성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지구를 식민지 행성으로 건설하여 화성인을 멸종에서 구하는 계획은 수정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지구력 2057년 3월 7일, 지구에서 포획해온 지구인들을 세뇌시키는 작업이 완료되었다. 그들에게 이곳은 화성이 아닌 지구이며, 지구를 침공했던 화성인은 지구 방위군의 우스꽝스러운 공격으로 저지되었다는 기억을 집어넣었다. 우리의 수정된 계획에 따라 세뇌당한 지구인은 이곳에서 지구인의 삶을 살며, 이곳을 지구와 같은 환경으로 바꾸어 줄 것이다. 하지만 지구를 식민 행성으로 만들기 위한 우리의 꿈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구인의 엄청난 생식력을 미루어볼 때 이곳 화성도 조만간 포화상태에 이를 것이라 예상된다.


지구력 2060년 7월 19일, 지구인 중 몇몇이 이곳 환경에 대한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다. 다시 세뇌를 시켰지만 혹시나 다시 발생할지 모를 사태에 대비하는 방법이 고안되어 실행되었다. 그것은 지구인들이 서로 관심을 가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방법으로 그들이 즐겼다는 생일 축하 풍습을 없애는 정치 제도를 도입하였다.


지구력 2079년 3월 19일, 순수한 지구인 혈통은 이제 없어진 것으로 판단된다. 지구인들은 화성인들과 교미를 하여 지구인과 화성인의 장점을 결합시킨 후손을 만들어냈다. 순수 혈통의 지구인들은 이곳의 대기에 적응하지 못했는지 오래 살지 못했다. 그들의 호흡 기관을 바꾸기 위해 투입되었던 약품은 성공작이 아닌 것 같다.


지구력 2156년 12월 24일, 금지하였던 생일 축하 풍습을 사람들 앞에서 해보인 소녀를 체포하였다. 놀라운 사실은 소녀는 지구인의 피가 단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순수 화성인 계열이라는 것이다. 소녀의 행동 동기는 더 조사해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지구력 2157년 1월 1일, 지구 식민지 건설 계획 시행의 10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핵으로 오염된 후 약 100년의 시간이 흐른 지구의 환경에 대한 조사 작업이 시작되었다. 그동안 꾸준한 정화 작업을 펼쳤지만 아직까지 단 하나의 살아있는 생명체가 발견되지 않은 그곳에 대한 실제적인 생체 실험이 시작된 것이다. 이번 실험은 순수 화성인 계통의 여자를 시작으로 순수 화성인 계통의 남자와 지구인과 화성인의 혼혈 계통 남녀를 대상으로 한다.



8.


<묵시록>을 넘기던 여진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책의 두께와는 달리 여진이 읽을 수 있는 내용은 채 20쪽 분량에 지나지 않았다. 나머지 분량은 아직 공백 상태로 남아 있었다. 여진은 충격으로 인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이 살던 곳이 지구가 아닌 화성이었다는 것보다 자신이 화성인이라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화성인인 내가 왜 지구의 잊혀진 풍습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일까? 누군가의 음모에 빠진 걸까? 여러 가지 생각에 빠진 여진을 향해 한순열이 입을 열었다.


“그 책은 원래 아무도 읽지 못하게 되어있는 책이지, 여기 우주 왕복선에 보관되어 왔으니까. 묵시록을 읽은 사람은 아마 네가 처음일거야. 지구에 가서 우리들의 꿈이 실현되도록 노력해주길 바라는 내 선물이랄까. 우리별은 이제 포화 상태에 이르렀어. 빨리 식민 행성을 건설하지 못하면 인구 포화로 인한 자원 부족 때문에 전쟁이나 폭동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하더군. 그럼 부탁하네.”


지금의 한순열의 태도는 여진을 조롱한다기보다는 정말로 공손히 부탁하는 것 같아보였다. 우주 왕복선이 지구에 인접했을 때 여진은 특수 부대와 순열의 비장한 배웅을 받으며 소형 캡슐로 옮겨 탔다. 지구로 향하는 캡슐의 창 밖을 바라본 여진의 눈에 푸른빛 지구가 들어왔다. 폐허가 된 지구를 향한 화성인의 두 번째 침공의 시작이었다.


- 2007년 1월 1일 조약돌 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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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올해로 40세가 된, 중학교 1학년인 아들과 초등학교 4학년인 딸을 두고 있는 평범한 가장이다. 물론 나에게는 너무나 사랑스러운 아내도 있다. 말 그대로 토끼 같은 자식들과 여우같은 마누라를 둔 남자다.


나는 1년 전만 해도 XX물산의 사장이었다. 큰 회사는 아니었지만 부채 없는 건실한 회사라 남들의 부러움을 사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직장이 없다. 1년 전쯤에 나에게 닥친 불행 때문이다. 거래처인 OO통상과의 업무를 위해 대전으로 차를 몰고 가던 중에 중앙선을 침범한 대형 트레일러와 정면충돌하는 사고를 당했다. 다행히 목숨을 잃지는 않았지만 7개월인가 8개월 동안 병원 침대 신세를 져야했다.


그리고 몇 달 전에 여기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나에게 휴식이 필요하다고 해서였다. 내가 살고 있는 이 곳은 OO아파트이고, 나는 502호에 살고 있다. 7층짜리 건물인 이 곳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하지만 특이한 점이 하나 있다. 여기 사는 사람들의 집안 구조가 조금씩 다르다는 것이다. 물론 벽의 재질도 각각 다르다. 입주하는 사람 측에서 마음에 드는, 가장 편안한 것으로 고를 수 있다고 했다. 내가 살고 있는 방은 값비싼 나무로 만들어져 있다. 수십 년이 지나도 휘어지거나 변하지 않는 나무란다. 내 아내가 나를 위해 특별히 골라준 것이다.


아내와 자식들은 나와 함께 살지 않는다. 내가 사고를 당한 후 아내는 병원비를 대기 위해 멀리 타지에서 일을 해야 했다. 나의 회사를 팔아서 마련한 돈도 어느새 다 떨어져서 우리의 보금자리였던 작은 집도 팔았다. 하지만 그 돈도 더 이상 남지 않았다고 아내가 나에게 말해주었다.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아내는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 애썼지만 끝내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그리고 아이들은 외할머니에게 맡겨졌다. 아이들은 전학을 가야했지만 나에게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아빠가 빨리 일어났으면 좋겠어요.' 라고 항상 말하던 딸아이의 말이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다. 아이들은 '아빠, 사랑해요.' 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아내와 아이들은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나를 찾아왔다. 내가 외로워할까 봐 그런다는 것을 나는 알 수 있었다. 아내는 항상 하이얀 백합꽃을 한 아름 가지고 왔다. 내가 가장 좋아하던 꽃이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 해주었다. 그리고 친구들과 찍은 사진, 외할머니와 찍은 사진 등 많은 사진을 가져와서 나에게 남겨 주고 돌아갔다. 가끔씩은 나와 함께 밖으로 나가 산책을 하기도 했다. 한 달에 한 번이었지만 나는 가족들과의 다음 만남을 기다리며 한 달을 버틸 수 있었다.



2.


어느 토요일 오후였다. 다음 날이 아내와 아이들이 나를 찾아오기로 한 날이라 나는 들떠 있었다. 지난 번 아이들이 주고 간 사진을 보며 한참 기분 좋게 웃고 있을 때였다. 나의 이웃집인 503호가 떠들썩했다. 어제까지 아무도 살고 있지 않았는데 누군가 이사를 오나보다 하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보았다. 부부인 듯한 젊은 커플의 흐느낌이 들려왔다. 남편인 듯한 사람이 부인을 달래는 소리도 들려왔다. 시끄러운 소리는 한참을 계속 되더니 어느덧 조용해졌다. 나는 나중에 새 이웃에게 인사나 하러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잠을 청했다. 오늘은 내일 만날 가족들 생각만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아내와 아이들이 찾아오기로 한 일요일 아침이 되기 전에 나는 잠에서 깨어버렸다. 가족들과의 재회에 대한 기대감에 잠을 설친 것이 아니었다. 고요함 속에서 나의 귓가를 맴도는 울음소리가 나의 단잠을 방해하였다. 나는 잠에서 깨지 않으려 애쓰다가 결국에는 일어나 버렸다. 울음소리가 어찌나 애처롭던지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나 또한 이유 없이 슬퍼지려 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울음소리가 어디서 나는지 찾으려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울음소리가 나는 곳을 찾아냈다. 그곳은 바로 503호였다. 나는 503호를 찾아갔다. 거기서 울고 있는 어린 여자아이를 만날 수 있었다.


나는 아이에게 '옆집인 502호에 사는 아저씨'라고 내 자신을 소개한 뒤 '왜 울고 있는지' 물어 보았다. 훌쩍거리며 고개를 숙이고 있던 여자아이는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아이의 얼굴을 본 나는 그 아이가 내 딸과 비슷한 또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아이는 계속해서 울기만 할 뿐 대답이 없었다.


'부모님은 어디 계시니?'라는 나의 질문에 그 아이는 울음을 멈추고 '부모님이 자신을 여기에 내버려두고 갔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울음소리는 작아졌지만 그 아이는 여전히 울먹거렸다. 나는 아이가 울고 있는 이유를 알게 되었지만 다른 궁금증이 생겼다. '그 아이의 부모가 자식을 버린 이유가 뭘까?'. 그리고 가능하다면 이 어린 여자아이가 부모님을 자주 만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함께 살지 못하고 외할머니 손에 길러지고 있는 내 아이들이 생각나서 마음 한 구석이 저려왔기 때문이었다. 나는 다시 울고 있는 이웃집 여자아이를 달래어서 자초지종을 듣게 되었다. 아이의 이야기는 이러했다.


여자아이는 내 딸과 같은 나이의 초등학교 4학년이고, 이름은 김유라였다. 여자아이에게는 다른 형제가 없으며, 엄마 아빠는 외국계 기업에서 일하는 사내 커플이다. 1달 전쯤에 학교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가던 길에 엄마 아빠의 직장 동료인 아저씨를 따라 갔다가 어느 건물의 방에 갇히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어디인지는 모르지만 경찰에 의해 얼마 전에 발견되어졌다. 엄마 아빠를 다시 만나게 되어 너무나 기뻤는데 엄마 아빠는 자신의 얘기는 들어주지 않고 말없이 울기만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편안히 쉬어야 한다며 지금 자신이 울고 있는 여기, 503호로 보내졌으며 엄마 아빠는 자주 오겠다는 말을 하고 울다가 돌아갔다고 한다. 여자아이는 자신이 부모에게서 버림받은 것이라고 했다. 나는 이웃집 여자아이가 버림받은 것이 아니며 나처럼 되돌릴 수 없는 사정으로 가족과 떨어지게 된 것이라고 한 참을 달래어 주었다. 그리고 내 가족들도 자주는 아니지만 나를 보러 찾아오며 내일이 그날이라고 말해주었다. 내일 찾아올 내 딸이 그 아이와 같은 또래이니 소개시켜주겠다는 약속을 하고서야 나는 잠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3.


내가 다시 잠을 깬 때는 일요일 점심 때 쯤이었다. 나는 '아저씨, 정말 고맙습니다.' 라는 여자아이의 목소리에 잠을 깨었다. 이웃집 여자아이의 목소리라고 생각했던 내 생각은 틀린 것이었다. 내 눈앞에는 나의 사랑스러운 아내와 내 아이들이 서 있었다. 그리고 그들 옆에 낯선 여자아이가 서 있었다, 처음 보는 그 아이는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거렸고 연신 '고맙습니다.' 라는 말을 해대었다. 아내는 그 아이의 어깨를 몇 차례 토닥거린 후 나에게 그 아이를 소개시켜주었다. 여자아이는 내 딸과 같은 반 친구이며 신장병을 앓다가 얼마 전에 신장을 기증 받아 건강을 되찾아 가는 중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신장이 나에게 기증 받은 것이라고 했다. 나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내가 2년 전쯤에 신장을 기증한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내가 신장을 기증해 준 사람은 분명히 20대 남자였다. 그 사람이 여러 번 나를 찾아와 감사 인사를 했기 때문에 나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나의 의문은 오래가지 않았다. 한 달 만에 만난 가족들을 보니 신장 기증의 문제 따위는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나는 가족들과 함께 살 수 있다면 신장을 양쪽 다 떼어주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내는 이번에는 백합꽃 대신에 프리지어 꽃을 가져왔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나는 그 눈물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프리지어 꽃은 바로 내가 아내에게 프러포즈할 때 주었던 꽃이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은 봄 소풍에서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그 동안 있었던 일을 얘기해 주었다. 가족과 함께 즐겁게 보낸 일요일 오후는 어느덧 어두워지고 있었다. 아내와 아이들이 돌아가야만 할 시간이 되었다. 아내는 또 다시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 애쓰며 또 찾아오겠다는 말을 남기며 나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다.


"여보! 잘 지내죠? 나와 당신 아이들은 당신이 우리 곁을 떠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언제나 우리 마음속에 살아 숨쉬는 걸요. 그리고 당신의 장기를 기증해 준 모든 사람들의 몸속에서도, 그리고 그들의 마음속에서도 당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알아요. 나는 당신이 뇌사 판정을 받은 이후에 많이 고민했어요. 하지만 우리 딸 민지의 친구가 신장병에 고통 받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결심했어요. 당신의 신장을 받은 이 아이를 보면 언제나 당신이 생각난답니다. 그리고 당신이 언제나 우리 아이들 곁에서 아이들을 보살펴 줬으면 해요. 초등학생이 납치되었다가 1달 만에 시체로 발견되었다고 해요. 하지만 당신이 우리 아이들을 지켜주니 난 걱정이 없어요. 여보! 너무 보고 싶어요. 그리고 사랑…….흑흑……."


아내는 마지막 말을 마치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리고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는, 어느새 어른 같이 느껴지는 우리 아이들과 내 딸의 친구에게 부축을 받으며 내가 살고 있는 OO납골당을 나갔다. 나는 내 아이들뿐만 아니라 내 이웃집 여자아이도 잘 돌봐줘야겠다고 다짐하였다. 그리고 프리지어 꽃내음을 두 손 가득 담아 이웃집, 503호로 향했다.



*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 유명을 달리한 고인(故人)들에게 이 글을 바칩니다.


- 2003년 12월 19일 조약돌 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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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다양한 생명체가 있다. 그리고 그 어떤 생명이든 소중하고 나름의 존재의 이유가 있다. 나는 모기로 태어났다. 인간에게는 하찮고 성가시게 여겨지는 존재이지만, 나는 모기로서의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왔다. 한국의 어느 한 구석에 위치한 시골이 나의 고향이다. 그곳은 흙냄새, 짐승들의 배설물 냄새, 농부들의 땀 냄새가 정겨운 곳이다. 그런데 그린벨트라는 것이 풀리면서부터 개발이 시작되어 굉음을 내는 이상한 기계들이 들락날락거리더니 공장이 하나둘씩 들어서고 있었다.


어릴 때 내가 놀던 곳은 어느 하수구였다. 나는 하수구의 시원한 물에서 친구들과 헤엄치며 노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내가 좋아하는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책을 읽는 시간이었다. 나는 종종 하수구의 외진 곳에서 홀로 책을 읽었다. 그곳은 다른 친구들이 잘 오지 않는 곳이었기 때문에 나는 혼자서 책을 읽으며 조용히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나는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종류의 책을 읽었다. 책을 통해 많은 것을 경험해 볼 수 있었으며 내 삶의 방향을 정할 수도 있었다. 누군가 나에게 감명 깊게 읽은 책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세 권의 책을 꼽을 것이다.


사랑하는 두 남녀 모기가 집안의 반대로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에프킬라를 마시고 죽는다는 슬픈 내용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그 첫 번째로, 나도 그들과 같은 사랑을 하고 싶어졌다.


두 번째는 <삼국지>라는 책인데, 옛날 중국이 어지러울 때 세 마리의 모기가 복숭아 가게의 하수구에서 의형제를 맺고 중국을 통일한다는 내용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나는 “난세는 영웅을 원하고, 영웅은 역사를 만든다.”는 진리를 얻을 수 있었고, 이 말은 어둡고 침침한 하수구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나에게 한줄기 빛이 되어 주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 감동을 받은 나는 영웅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늘 가슴에 품은 채 자라왔다.


마지막 책은 내 인생의 방향을 바꾸어준 명작 중의 명작인 <모기 영웅 전설>이다. 이 책은 여러 영웅들의 이야기를 모아 놓은 책이다. 어지러운 섬나라를 통일 시켰던 일본 뇌염 모기 장군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우리들의 역사를 만들어온 영웅들의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진행되었다. 특히 빨간 집모기 발명가가 남긴 “천재는 1 퍼센트의 영감과 99 퍼센트의 노력으로 만들어진다.”는 말이 내 가슴에 와 닿았다. 그가 발명해 낸 다양한 종류의 물건들이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었다. 그의 이야기가 담긴 <모기 영웅 전설 : 모기향을 이겨낸 빨간 집모기 발명가 편> 중에서 나는 특히 이 부분이 마음에 들었다.


<언젠가부터 알을 낳을 때가 된 여성 모기들이 피를 빨아 먹기 위해 인간들에게 다가갔다가 그냥 돌아오는 일이 빈번히 발생했다. 인간에게 다가가기만 하면 현기증을 느낀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다른 산짐승들의 피를 빨아서 영양을 보충해도 되었지만, 인간들의 피가 유난히 단맛이 진했기 때문인지 여성 모기들은 인간의 피만을 고집했다. 그리고 방송사 취재팀이 조사를 해본 결과 현기증의 원인은 바로 인간들이 발명해 낸 모기향이라는 것이었다. 인간들은 저녁이 되면 초록색의 둥그렇게 생긴 것에 불을 붙였는데 거기서 흰 연기가 솟아오르고 동시에 고약한 냄새가 퍼지기 시작했다. 나는 예전에 볏단을 태워서 우리들의 접근을 막았던 인간들의 행동에 대해 책에서 본 적이 있기 때문에 모기향의 원리를 알 수 있었다. 우리들이 싫어하는 냄새를 풍겨서 우리의 접근을 막는 것이 그 원리였다. 모기향 때문에 점점 인간의 피를 먹을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어 출산율이 낮아지고 있었다. 그때 내 머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방독면을 개발해냈다. 모기향의 독한 냄새와 연기도 방독면을 쓰면 견딜 수 있었다. 여성 모기들은 방독면을 쓰고 모기향 연기 안을 마음대로 휘젓고 다녔다. 그리고 다시 출산율이 정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영웅들의 이야기를 읽고나서 나는 내 이름을 역사에 남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더러운 하수구물을 달게 들이키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는 알게 되었다. 내 몸이 다른 어떤 모기와는 다르다는 것을 말이다. 내가 장구벌레라는 모습으로 살았던 하수구는 어느 공장에서 흘러나온 물이 흘렀다. 내 소꿉친구들 중 대부분이 그 물을 마시고 생(生)의 끈을 놓아버렸다. 하지만 나는 그 물을 마실수록 몸이 강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몇 안 되게 내 곁을 지키던 나머지 친구들도 모두 여름철 방역이라는 이유로 뿌려진 정체를 알 수 없는 하얀 연기를 마시고 죽어버렸다. 그런데 이상하게 나는 그 연기 속에서도 살아남았다. 나는 방독면을 쓰지 않았는데도 연기를 전혀 느끼지 못했다. 이제 나는 이곳에 홀로 남은 것이다. 허물을 벗고 날개가 돋아나자마자 나는 정들었던 고향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정착한 곳은 자동차가 많은 어느 도시였다. 책에서만 보았던 풍경이 내 눈 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매년 일본에서 한국에 수학여행을 오는 시기가 되었는지 보건소의 <일본 뇌염 예방 접종>이라는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새로운 풍경도 이제 눈에 익어 들어오고 자동차의 매연 때문에 숨을 쉬기가 곤란했다. 그래서 나는 잠시 숨도 돌리고 긴 여행에 지친 몸을 쉬어갈 요량으로 주변의 공원으로 찾아갔다. 수풀 속에 앉아서 나들이 나온 인간들의 모습을 보고 있는데 누군가 말을 걸었다.


“저기 어디에서 오셨어요? 처음 뵙는 분인데…….”


꽃핀을 머리에 꽂은 예쁜 소녀가 나에게 물었다. 나는 그동안 있었던 일을 그녀에게 이야기해주었고 그녀는 가끔 맞장구도 치면서 내 말을 귀담아 들었다.


“여기는 그곳보다 더 무시무시한 것들이 많아요. 인간들은 우리들에게 무슨 원한이 그리 많은지 모기향과 뿌리는 모기약은 기본이고 전자 모기향, 바르는 모기약까지 쓴답니다.”


“그렇군요. 전자 모기향을 직접 본적은 없지만 책에서 들은 적은 있어요. 모기향과 비슷한 원리죠. 모기향의 독한 연기가 인간들 자신들에게도 해를 끼치니 개발한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녀는 나의 박학다식함에 놀라는 눈치였다.


“그래도 이런 공원에서는 전자 모기향 사용이 불가능하니 조금은 안전하군요. 모기향이나 뿌리는 모기약은 이 방독면을 쓰면 문제없고요.”


수십 년 전에 빨간 집모기 발명가가 방독면을 개발한 이후 방독면은 돈 있는 자들만 쓸 수 있었던 값비싼 물건이었다. 그러던 것이 몇 년 전부터 정부에서 방독면을 모두에게 무상 보급했다. 그리고 매달 15일을 민방위의 날이라고 지정하여 방독면을 쓰고 위기 상황에 대처하는 훈련을 실시하였다. 방독면이 조금만 더 일찍 보급되었더라면 내 가족, 내 친구들이 그렇게 허무하게 목숨을 잃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가 방독면을 꺼내 들자 그녀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가득했다. ‘이건 무슨 의미의 웃음일까?’라는 생각이 들자마자 그녀의 입이 떨어졌다.


“여기 실외에서 사용할만한 것을 인간들이 또 개발했어요. 인간들은 휴대 전화기라는 것을 하나씩 들고 다녀요. 하나씩 들고 다니는 걸 보면 뭔가 중요한 물건 같은데……. 어쨌든 거기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오거든요. 그 소리는 정말 견딜 수가 없어요. 그걸 전자파 모기향이라 부른다던데…….”


나는 새로운 정보를 알게 되었다. 인간들이 우리들을 얼마나 싫어하는지는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지는 몰랐다. 이제는 우리들을 잡으려고 모든 인간들이 이상한 소리가 나는 기계를 들고 다닌다. 그녀와 나의 대화는 계속 되었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이야기가 계속될수록 내 머릿속에는 두 가지 생각이 맴돌았다. <로미오와 줄리엣>이란 책에서 보았던 사랑을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그녀를 위해 전자파 모기향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때 갑자기 그녀가 소리쳤다.


“으아아아, 그 소리에요.”


그녀는 귀를 틀어막으며 고통스러워했다. 그런데 나는 그 소리가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래, 그거였어.”


나는 전자파 모기향에 대항할 방법을 알아냈고, 고통에 신음하는 그녀를 구해 안전한 곳으로 피신했다. 전자파 모기향의 원리는 간단했다. 여성 모기들은 우리 남성 모기들의 날갯짓 소리를 유난히 싫어한다. 남자인 내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 소리가 견딜 수 없이 싫다고 한다. 물론 나도 이걸 책에서 본 것이고 실제로는 잘 모른다. 하지만 아까 그 전자파 모기향에서 나는 소리는 분명 내가 날갯짓을 할 때 나는 소리와 비슷했다. 인간의 피를 빨아 먹는 것이 여성 모기뿐이라는 걸 안 인간들이 우리 남성들의 날갯짓 소리를 이용한 것이 바로 전자파 모기향의 실체였던 것이다. <삼국지>의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란 말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건가보다. 내가 발견한 방법으로 나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었다. 그녀의 사랑을 얻고, 동시에 전자파 모기향에 대항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냈다.


“인간들이 남성 모기들의 날갯짓 소리를 이용해서 동족인 여성 모기들을 괴롭힌다면 그에 대한 대응책은 하나뿐입니다. 그건 바로 여성 모기들이 남성 모기들의 날갯짓 소리에 적응하고 그 소리마저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 일로 나는 모기들의 영웅이 되었고 <모기 영웅 전설>에 당당히 내 이름을 올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꿈꾸어왔던 모습을 이루어낸 내 곁에서 그녀가 웃고 있다.


<모기 영웅 전설 : 돌연변이를 극복하고 성공한 모기 편 중에서>

- 2005년 6월 2일 조약돌 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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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김을 불었다. 유리창에 입김이 서려 뿌옇게 되었다. 창에 서린 입김을 지워냈다. 입김이 사라짐과 동시에 유리창에 비치었던 모든 것이 사라졌다.


[마법의 창(窓)]


인간은 항상 뭔가를 필요로 한다. 필요는 발명을 낳는다. 발명은 문명의 이기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인간은 이전보다 진보된 이기를 원한다. 이런 과정이 순환되면서 인간의 문명은 발전해왔다.


2010년, 전 세계가 과밀화된 후 건설 업계에 불황이 찾아왔다. 더 이상 건물을 지을 곳이 없어지고, 웬만큼 낡은 건물이 아니면 건물을 철거하지도 않았다. 건물을 철거할 때 발생하는 분진과 소음 때문이었다. 이리하여 건설 업계는 건물의 보수와 수리, 리모델링과 같은 개조 작업에 전력투구하게 된다. 하지만, 이것도 한정된 수요뿐이라서 건설업체는 하나둘씩 문을 닫기 시작한다. 현재 전 세계를 이끌어 가는 건설 업체는 2개 정도였다. 첫 번째 업체는 달에 진출하려는 인간의 소망을 이뤄주기 위해 달에 건물을 짓기로 선정된 M업체였고, 다른 한 곳은 전쟁으로 망가진 나라를 재건하는 사업을 독점한 W업체였다. 이 업체의 로비로 인해 전쟁이 일어난다는 소문까지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 말은 설득력이 있었다. 전쟁은 모든 것을 파괴하기 때문에 그것을 재건하는 것에 들어가는 돈의 규모가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2010년 2월 14일은 건설업의 한 획을 긋는 날이 되었다. 이유는 이러했다. M업체와 W업체의 뒤를 이어 세계 건설업의 3위를 차지하고 있는 G업체가 신소재를 발견해냈기 때문이다. 물론 세계 3위라고는 하지만 세계 건설업의 2위인 W업체와 규모 등에서 워낙에 차이가 나기 때문에 이름뿐인 3위였다. 새로운 소재는 건설업을 다시 부흥시키기에 충분했고, 그 기술을 빼내기 위해 각국에서 산업 스파이가 투입되고 있다는 소문도 무성했다. 그러나 신소재에 대한 기술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은 개발된 소재가 아니라 우연한 기회에 발견한 소재이기 때문이었다.


2007년 11월에 아마추어 천측 관측자에 의해 발견된 혜성이 있었다. 이것은 발견자인 수의 이름을 따서 수(Su) 혜성이라 명명되었다. 나사(NASA)에 따르면 수 혜성은 2010년 2월 14일에 지구와 충돌할 가능성이 78%였다. 그리하여 이를 막기 위한 수 혜성 폭파 팀이 만들어졌다. 1999년에 지구가 멸망한다는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으로 인한 인간들의 불안한 심리에 흥행을 했던 '딥 임팩트(Deep Impact)', '아마겟돈(Armageddon)'과 같은 영화에서 보아왔던 내용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수 혜성 폭파 팀의 임무는 수 혜성이 지구와 충돌하기 3일 전인 2010년 2월 11일에 수 혜성에 도착하여 수소 폭탄을 설치하여 수 혜성을 폭파시키는 것이었다. 수 혜성 폭파 팀의 이름은 키쉬(KISH - KIll Su with Hydrogen bomb)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2010년 2월 11일에 수 혜성에 도착하여 수소폭탄을 설치하고 지구로 귀환하였다. 그들이 설치한 수소 폭탄은 2010년 2월 12일에 폭발하여 수 혜성을 산산조각 내었다. 수 혜성이 폭파된 후 그 조각들은 우주상에서 분해 되었다. 하지만 그 중 하나의 조각이 운석처럼 지구에 떨어지게 된 것이다. 이것이 마법의 창을 둘러싼 이야기의 시작이었다.


2010년 2월 13일, 대한민국의 부산광역시에 위치한 광안리 바다에 운석이 떨어졌다. 겨울이라 수영을 즐기는 사람들은 없었지만 그 즉시 광안리는 민간인의 출입이 통제되었다. 그리고 국립 과학 연구소의 통제 하에 모든 조사 작업이 진해되었다. 그리고 운석은 우주에 대한 연구를 위해 정부에 귀속되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신소재가 발견되었다는 사실을 안 사람은 단 두 사람이었다. 국립 과학 연구소에 7년째 몸담은 이주석이라는 연구원과 그의 친구인 김혁이었다. 이주석은 수 혜성의 잔해로 판명된 운석에서 발견한 신소재를 조사해보고 깜짝 놀랐다. 이주석은 이것이 인공 치아나 인공 뼈에 사용되는 바이오 글라스(Bioglass)와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때마침 김혁은 바이오 글라스를 사용한 건축 자재 개발에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었다. 이주석은 거액의 돈을 받고 김혁에게 신소재를 넘겼다. 그리고 김혁은 신소재를 이용하여 기존의 유리창보다 강도가 2배 이상이 센 유리를 만들게 되었다.


유리창이 완성된 날, 김혁은 자신의 욕실의 거울에 신소재로 만든 거울을 만들게 되었다. 샤워를 마치고 나온 김혁은 서리가 끼어있는 거울을 발견하고 아무렇지 않게 손으로 문질렀다. 그 순간, 그의 손이 사라졌다. 놀란 그는 그의 오른손을 보았다. 없다. 그의 손이 사라졌다. 그는 신소재의 사용 방법을 알아냈다. 비록 손을 하나 잃어버렸지만.


2010년 2월 20일, 세계 건설업의 3위를 차지하던 G업체가 신소재에 대한 발표를 하였다. '마법의 창(窓)'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빛을 본 이 소재는 유리창에 비친 것을 연필로 쓴 것을 지우개로 지우 듯 깨끗이 지우는 것이었다. 김혁은 폐허가 된 건물 앞에 서서 마법의 창을 들고 섰다. 그리고 입김을 불었다. 유리창에 입김이 서려 뿌옇게 되었다. 김혁은 자신의 왼손으로 창에 서린 입김을 지워냈다. 입김이 사라짐과 동시에 유리창에 비치었던 모든 것이 사라졌다. 그것은 거울이 아니라 일반 유리창이었기에 김혁은 무사했다.


G업체의 발표가 끝나자마자 G업체의 주식은 2배 이상으로 뛰었다. 그리고 세계의 언론은 떠들썩했다. 신소재를 이용하여 G업체는 소음과 분진을 일으키지 않고 건물을 없앨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M업체와 W업체를 따라잡고 있었다.


문제가 생겼다. 마법의 창(窓)이 도난당한 것이다. G업체는 혹시나 다른 경쟁 업체에게 신소재를 도난당할까 두려워 단 하나의 마법의 창만 남기고 모든 소재를 폐기처분하였다. 그리고 마법의 창(窓)은 신분증, 음성, 망막, 지문 확인의 4중의 보안 확인 과정을 마친 사람만 접근할 수 있도록 보관되고 있었다. 하지만, 마법의 창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2010년 3월 15일, 세계는 공포에 쌓였다. 2000년대 후반에 테러로 전 세계를 위협했던 과격 테러 분자들의 모임인 '카스노프(KASNOF)'가 마법의 창을 가지고 있다는 발표를 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지구를 통째로 지워버리겠다고 했다. 우주선의 한 유리창에 이미 마법의 창을 설치했다는 발표였다. 그리고 우주선이 지구를 출발해 우주선의 유리창에 푸른 지구의 모습이 들어오는 순간 입김을 불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지구는 순식간에 사라질 것이다. 그들의 요구조건은 어마어마했다. 전 세계 감옥에 수감된 모든 테러리스트(Terrorist)들의 전원 석방과 엄청난 금액의 돈이었다.


이들의 요구 조건을 들어주더라도 지구가 위기에 처할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한 국제 연합(UN)은 이들을 제거하기 위한 비밀 특사대를 만든다. 그리고 '카스노프'의 배후에 달의 건설업을 독점한 M업체의 로비가 있었음을 알게 된다. 비밀 특사대는 M업체의 최고 경영자(CEO)를 구속하고 '카스노프'의 모든 계획을 파헤친다. 그들이 3월 20일에 중국의 한 곳에서 우주선을 발사하기로 한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한 비밀 특사대는 즉시 모든 병력을 투입한다. 하지만 ‘카스노프‘의 우주선은 이미 떠나버렸다. 그리하여 국제연합은 그들을 우주상에서 격추시키기로 하고 로켓을 발사한다.


국제연합의 로켓 3기가 '카스노프'의 우주선을 격추시키려던 찰나 우주선의 마법의 창에 로켓이 비쳤다. '카스노프'는 즉시 입김을 불어 로켓 3기를 모두 지워버렸다.


절망에 빠진 지구는 마지막 순간을 준비하는 인간들로 난장판이 되었다. 각종 극악한 범죄가 난무하고 있었다. 김혁 역시 마지막 순간을 기다리며 자신이 마법의 창을 개발하지 않았다면 하고 후회하며 자신의 사라진 오른손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지구를 위기에서 구해낼 방법을 생각해냈다.


국제 연합은 분주했다. 30분만 있으면 '카스노프'의 마법의 창에 가득 찬다는 예측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우주선의 예상 이동로를 예측하고 거기로 가능한 모든 인공위성을 이동시키고 있었다.


‘카스노프‘의 우주선은 달을 향하고 있었다. 거기는 이미 M업체에 의해 개발된 그들의 보금자리가 있었던 것이다. 마법의 창에 지구가 가득 차고 있었다.  ’카스노프’의 우두머리는 마법의 창에 입김을 불었다. 그리고 그는 웃으며 창에 서린 입김을 지워냈다. 그 순간 그는 보았다. 마법의 창에 가득 찬 것은 지구가 아니라 지구를 지키기 위해 국제 연합에서 움직인 인공위성들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그리고 인공위성들의 은빛이 태양에 반짝인다는 것을. 그 순간 ‘카스노프‘의 우주선은 사라졌다. 마법의 창도 함께. 인공위성이 거울과 같은 역할을 해낸 것이다.


- 2004년 2월 15일 조약돌 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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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세상은 고요하다. 시끄러운 자동차 소리도, 신나는 노래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지금 나는 아주 긴 줄의 일부분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나의 몸의 일부분을 이루고 있는 나의 귀! 그러나 그것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니다.

이미 N13579가 지배하였다. 오늘도 난 EP(EarPhone)N13579를 보충하기 위해 줄을 서 있다.



2004.9.

매스컴이 떠들썩했다. 일본의 초미니 카세트 전문 제작사인 S사가 3년 전 카세트의 초 소형화(3 X 4cm)에 이어 감성 인식 기능을 가진 이어폰을 개발해냈다. 지난 10년간의 비밀 연구(프로젝트명 EPE) 끝에 이뤄낸 성과였다. EP속의 N13579가 사람의 감성 변화를 인식하여 사람의 귓속 달팽이관을 대신해서 소리를 전달해주는, 이른바 21세기를 이끌어나갈 신기술이었다. EP는 귓속에 내장되고, S사의 중앙 컴퓨터와 신호를 주고받으며 그 임무를 해나가는 것이었다. 신기술이 개발될 때면 언제나 그렇듯이 사람들은 S사의 EP가 사람의 감각중추는 물론이고 그 개인까지 지배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하였다. 그러나 EP는 날개 돋친 듯이 팔려나갔다. 그리고 나도 그 조그만 기계를 내 귓속에 장착시켰다.



2005.3.

소리가 이상하다. 마치 주파수를 정확히 맞추지 못한 라디오 방송 같다. 불현듯 EP가 생각났다. 그 동안 EP를 의식하지 못했던 것이다. 내가 의식하지 못할 만큼 EP는 내 몸의 일부분이 되어 있었다. 청각 이상의 원인을 EP라고 단정하며 나는 EP를 귓속에서 빼냈다. 고요하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병원에서 믿을 수 없는 일을 알게 되었다. 내 청각세포가 어떤 물질에 의해 변이를 일으켰다는 것이다. 그 물질은 아직 의학계에 보고 된 적이 없다고 했다. N13579! 난 이번에도 그렇게 단정 지었고, 믿고 싶지 않았지만 내 생각이 맞았다.

EP속의 N13579는 영구적인 것이 아니라 EP를 처음 사용한지 6개월 정도가 지나면 N13579가 소멸되고 청각에 이상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리고 청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EPN13579를 보충해야한 다는 것이다.

그렇게 됨으로써 EPN13579는 첫 판매된 지 6개월 만에 가격이 2배로 올랐다.

EP가 처음 나왔을 때의 사람들의 우려 -S사의 EP가 사람을 지배하게 될 것- 는 현실이 되어버렸다. 사람들은 소리를 들으려 하는 본능에 이끌려 N13579를 보충하기 시작했고, S사의 정신적, 신체적, 경제적 노예가 되었다.



2005.4.

EPN13579에 대한, 그러니깐 S사에 대한 비판이 계속되고 있다. 자신들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사람을 노예화한 S사의 비인간적인 행위에 전 세계가 경악하고 있다.

그러나 그 행위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국제기구는 힘을 잃은 지 오래고, 이미 전 세계는 달러화가 아닌 엔화의 경제력에 의해 좌우되고 있다. 일본의 최첨단 산업에 대한 집중 투자가, 세계의 최강자라 여기며 안일하게 대처하던 미국을 눌러 버렸다. 일본은 제2식민지 제국 건설을 꿈꾸며 여러 최첨단 산업에 투자를 했고, 그들의 꿈은 조금씩 실현되어 가고 있다. S사의 EP는 그 중 일부분인 것이다.



2005.9.

사람을 노예화한 양심의 일부분이 눈을 떴다. S사의 연구 개발 요원인 이시와키가 EP의 비밀을 폭로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S사로부터 많은 돈을 받고 있었고, S사의 차세대 주자로 불려질 정도의 신임을 얻고 있었다. 그러나 인간의 잔인함, 그 속에서 조금씩 싹텄던 양심이 피어났다. 그는 자신의 연구 개발이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는 것에 회의를 품었다. 아무리 시대가 변하였어도 선()은 남아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시와키는 EP의 비밀폭로 선언 얼마 후 싸늘한 모습으로 발견되었다. 비밀을 폭로하지 못한 채.



2005.10.

EP의 비밀,S사의 그것을 알아내기 위한 결사대가 조직되었다.

N13579를 보충하는데 많은 돈을 써버린 사람들이 주축이 되었다. N13579의 가격은 계속 솟았고, 이성을 가진 사람이 청취본능에 굴복하여 N13579는 세계를 좌지우지하였다. 나는 결사대에 지원하는 대신 N13579를 보충하기 위해 줄을 섰다. 한 달에 한번은 보충해야 하기에 언제나 정의를 추구하고자 노력하던, 노력했었던 나였지만 지금은 S사에 굴복하였다.



2006.3.

드디어 결사대가 움직였다. 난 결사대에 지원하지 않았지만, 그들이 EP의 비밀을 알아내기를 은근히 바랬다. 그 바람은 나만의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결사대 그들 역시. 그들은 S사에 침입하여 EP의 비밀을 알아내고자 노력하였다. EP에 관한 정보는 없었다. 2의 식민지 제국 건설을 꿈꾸는 이들이 그리고 그대로 되어 가는 상황에서 그 정보를 소홀히 다루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거기다 이시와키 사건까지 있지 않았던가. EP에 관한 정보는 모두 없앴고, 오직한 군데에만 남겨두었다. 그곳은 그 어떤 누구도 손대지 못하는 비밀스러운 곳, S사 사장의 두뇌였다. 그 조그만 두뇌에 모든 것이 담겨있다. 그 비밀을 알아내는 것은 불가능해진 것이다. 그리고 비밀을 알아내지 못한 결사대는 모두가 자결하였다. 그들의 자결은 N13579EP, 그리고 S사에게서 벗어남을 의미하기도 했다.



2006.10.

S사 사장이 죽었다. 그것은 전 세계의 충격이었다. 그 사악한 자가 죽어서 모두 기뻐했으나, 그의 두뇌가 죽었음을 슬퍼했다. 마지막 비밀을 담아두었던 그의 두뇌, 그것은 세상 사람들에게 마지막 선물을 남겼다. 이제 EPN13579의 생산과 보충은 S사의 중앙컴퓨터에 의해 자동으로 이루어진다. 그 조그만 두뇌가 이 일을 해놓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러나 그나마 남아있던 희망도 모두 사라졌다.



2006.12.

여전히 세상은 고요하다. 시끄러웠던 자동차 소리도, 신났던 노래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 나는 아주 긴 줄의 일부분을 이루고 있다. 나의 몸을 이루고 있는 나의 귀! 여전히 그것은 내 것이 아니다. 지금도 N13579가 지배하고 있다. 아직까지 난 EPN13579를 보충하기 위해 줄을 서있다.

내가 S사에게서 벗어남을 선택하지 않는 한, 영원히…



에필로그

1998, 현재. 세상은 시끄럽다. 그렇지만 그 시끄러움이 축복일 수 있다. 소설이 현실로 실현되는 경우가 있었다. 위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 1998년 조약돌 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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